남자의 청춘은 언제 끝나는가? 혹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했다. 예비군 훈련이 끝나는 순간, 혹은 자기와 동년배의 운동선수가 은퇴하는 순간, 남자의 청춘은 끝나는 것이라고. 대개 30대 중반을 전후로 모든 남자들은 그 순간을 경험한다. '더 이상 당신은 완력으로 적을 제압할 수 없는 퇴물이 되었으니 민방위 훈련이나 가시오'라는 통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 남자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팔공산에서 열렸던 간부수련회에서였다. 몇몇 고등학교가 동시에 참가한 그 수련회에서 경북고를 다니고 있던 한 녀석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야, 금마 그게 삼성에 입단만 하마 인자 해태하고 해볼 만할 끼라. 1학년인데 벌써 145㎞ 나온다. 거다가 왼손잡이라."
1995년, 그 남자는 고맙게도 삼성에 입단한다. 팀의 에이스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는 부드러운 스윙과 정교한 타격으로 제2의 '장효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은다. 언젠가는 반드시 타격왕을 할 재목. 당시에는 모두들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 뒤, 이 남자는 20년 동안 단 한 번도 타격왕에 오르지 못한다. 대신 한국과 일본에서 도합 549차례 펜스 너머로 자신의 타구를 날려 보냈을 뿐이다.
1999년 그가 홈런 신기록을 세웠을 때, 나는 병장 계급장을 달고 모든 중대원들에게 그 장면을 강제 시청시키고 있었다. 2000년 내가 제대를 하고 빈둥거리고 있을 때 그는 시드니에서 마쓰자카를 상대로 투런포를 작렬시켰고, 2002년 내가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을 때, 그는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동점 3점포를 날렸다. 세계 최연소 300홈런은 통닭집에서, WBC 도쿄돔 역전 홈런은 집 소파에서, 베이징 올림픽 역전 홈런은 상견례를 하는 날 봤다. 내 알찬 구경 인생에서 한 가지 애석한 것이 있다면 그가 56호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우는 장면을 라이브로 보지 못했다는 것인데, 뭐 인생이 항상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는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도 한국 프로야구의 중심에 서 있다. 다시 한 번 3할, 30홈런, 100타점을 기록한 뒤, 자신의 5번째 한국 시리즈를 앞두고 있는 것이다. 이번 시리즈에서 삼성이 승리한다면, 해태도 기록하지 못했던 미증유의 통합 4연패를 이루게 된다. "금마만 오마 해태한테 이길 수 있다"던 경북고생의 예언이 얼추 적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1976년 용띠, 우리들의 청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예비군 훈련은 5, 6년 전에 이미 끝났는데, 이승엽, 그가 여전히 배트를 잡고 대구와 라이온즈와 우리들의 마지막 청춘을 위해 펜스를 노려보며 서 있기 때문이다.
박지형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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