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비때문에 꿈 접지않게…" 읍면마다 민간 장학회 운영
"요즘은 대학교 등록금이 너무 올라 200만~300만원 씩의 장학금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시골 학생들의 경우, 부모 신세를 좀 덜 지고 공부하려면 적어도 500만원은 돼야 하지요. 이마저도 겨우 한 학기 등록금에 그칠 뿐이지요. 이제 이우장학금 수혜자 가운데 검사도 나왔어요. 정말 뿌듯하지요."
달성군 가창면 지역의 장학단체인 재단법인 이우장학회의 설립자인 여우균(작고) 이사장이 지난 2월 12일 대구 호텔수성에서 열린 '제11회 이우장학회 장학금 수여식' 자리에서 털어놓은 얘기다.
이날 이우장학회는 기초과학분야 대학생 4명에게 각각 1천만원씩을 쾌척했다, 일반대학생 28명은 각 500만원, 초'중'고교생 13명에게는 모두 600만원 등 모두 45명의 학생들에게 1억8천3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우장학회 관계자는 "장학금 전달식에서 이우장학금을 받아 어렵게 공부해 사법시험을 통과한 가창면 용계초교 출신 법무부 박모(38) 검사가 축전을 보내와 이날 장학금을 받는 후배들에게 큰 용기를 북돋워 줬다"며 "박 검사를 비롯해 서울에서 활동 중인 이우장학생 출신들이 매년 '감사의 모임'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우장학회는 2004년 첫해 28명에게 3천950만원을 준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장학금 지원 대상 학생과 수혜액을 늘려왔다. 현재까지 모두 479명의 장학생을 선발해 13억5천39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시골 면 단위에서는 정말 '통 큰' 장학금이다.
달성군 가창면 출신으로 반월공단에서 피혁공장을 운영해온 고 여 이사장은 지난 2002년 11월 사재 10억원을 출연해 이우장학회를 설립했다. 2011년 20억원을 비롯해 모두 4차례에 걸쳐 증자, 현재까지 총 53억원의 장학기금이 쌓였다. 여 이사장은 올해 이우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한 후 3개월 여만인 5월 숙환으로 별세해 후학들을 안타깝게 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했다. 달성군이 읍'면마다 장학재단을 설립, 청소년 학업지원과 인재 육성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군 전체 9개 읍'면에서 장학회가 관 주도가 아니라 주민들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현재 전국 어느 지자체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군내 장학회는 달성군 전체를 아우르는 달성장학재단, 9개 읍'면 장학회, 외부 장학회 등 15개 정도다. 장학기금 규모는 달성장학재단 70억2천만원을 포함해 220억여원에 이른다. 이 밖에 각 지역농협이나 사회단체에서 운영하는 장학재단도 부지기수다.
달성장학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문오 달성군수 역시 2010년 취임 이후 줄곧 교육정책에서 손을 놓지 않고 있다. 김 군수가 5년여 동안 재임하는 과정에서 출연된 기금은 27억7천여만원으로 달성장학재단의 전체 기금 70억2천만원 가운데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도에 첫 설립된 달성장학재단은 올해로 15년 차에 이르고 있다.
달성군 정책사업과 장학담당 직원 서주란 씨는 "달성장학재단의 경우 2012년 이후 달성군이 자체적으로 모두 4회에 걸쳐 추가출연을 했다"며 "여기에다 농협 등 여타 기관에서도 기금을 보태는 등 지역의 인재양성에 자발적 동참이 이뤄져 이제 아주 탄탄한 장학재단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는 '배우는 사람'이고, 진정 성공한 자는 '이 세상이 나에게 준 것보다 더 많이 세상에 되돌려 주는 사람'입니다."
이 말처럼 달성군 내 읍면 단위로 이뤄지고 있는 장학회는 활동이 활발하다. 가창면의 이우장학회처럼 상당수가 해당 읍면 출신의 기업가나 독지가가 나서서 거액의 기금을 출연해 장학재단의 기반을 놓은 것이다. 지역의 인재를 키우겠다는 기업인의 아름다운 도덕적 의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현풍면 지역의 재훈장학회. 기업인의 애틋하고 남다른 자식사랑이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초석이 됐다. 이 장학재단은 지금까지 14년째 이어지면서 이제 지역의 인재를 길러내는 요람이 됐다.
달성군 현풍면 현금입출금기 전문제조업체인 대아하이테크㈜ 최경태(61) 대표이사.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고려대학교 재학 당시 4년 내내 각종 장학금을 받았을 정도로 공부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온갖 시련 끝에 기업을 일으켜 세운 최 대표는 '나름대로 성공은 학비를 보태준 모교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직접 장학사업에 뛰어들었다.
장학사업의 시작은 2000년이었다. 최 대표는 아들 재훈(35) 씨가 서울대에 합격하자 3천만원의 장학기금을 마련해 모교인 대구 대건고에 내놨다. 최 대표는 이왕 펼쳐놓은 장학사업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에 2006년 2월 아들 이름을 딴 '재훈장학회'를 설립했다.
최 대표는 "내 자식만 예쁜 게 아닙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 모두가 국가의 동량으로서 소중한 재산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장학재단의 몸집을 좀 더 키워볼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재훈장학회는 이후 수혜학교를 현풍고, 포산고 등지로 늘리는 등 지금까지 1천550명에게 6억3천6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아들 재훈 씨는 6'4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의원으로 당선돼 지역발전을 위해 뛰고 있다.
달성군 출신의 박상하(국제정구연맹회장) 이사장이 설립한 금맥장학회는 1975년부터 달성군 지역에서 장학사업을 펼치기 시작한 이후 40여 년간 매년 장학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 3천200명의 중'고'대학생에게 26억여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 밖에 하빈면의 정목장학회는 대구에서 의료법인 정목재단 한패밀리병원을 운영하는 정덕표 이사장이 5억여원의 기금을 출연했고, 논공읍의 효천장학회는 차종태 전 진성학원 이사장이 내놓은 3억5천여만원짜리의 부동산이 모태가 돼 설립됐다.
유가면의 청담장학회는 유가면 유곡리 출생으로 고향인 유가초등(17회), 현풍중'고(4회)를 나와 서울에서 서광산업을 운영하는 김윤철 회장이 설립했다. 김 회장은 현재 서울관악문화원장과 지난 5월에는 재경달성군향우회장을 맡기도 했다. 어려운 달성군 출신 자녀를 위해 서울에 달성학사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옥포면의 경복장학회는 기계공구 회사인 케이비원의 김정도 대표, 현풍면의 현암장학회는 장학회 설립을 위해 현풍초'중'고를 졸업한 김징완 전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다사읍의 다사장학회는 이직노 다사 새마을금고 이사장 등 출향 기업인들이 장학회를 설립해 고향의 동량들을 키우고 있다.
달성장학재단 이사장인 김문오 군수는 "지역출신 기업인들이 침체된 경기 속에 매년 몇 천만원씩 선뜻 내놓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출향 기업인들이 주축이 된 각 읍면 장학회는 지역 인재양성의 든든한 주춧돌이 되고 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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