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4일. 서울대 황우석'문신용 교수팀이 지에 논문을 게재한다. 세계 최초로 인간 체세포 핵 이식을 통해 인간배아복제에 성공했고,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석 달 뒤 지에서 황우석 교수팀 연구에 여성 연구원 두 명의 난자를 사용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됐다. 하지만 국민 영웅 앞에 윤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난자 채취 과정이 불임 및 사망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상관없었다. '성과만 나오면 과정은 아무래도 좋다'는 것이 유구한 교훈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부터 재계, 언론사부터 연예계까지 한 입으로 '박사님 만세'를 연호했다.
2005년 5월 19일. 지는 황우석, 섀튼 교수팀의 논문을 다시 한 번 게재한다. 이번 논문은 '환자의 체세포'를 이용해 맞춤형 줄기세포를 얻어냈다는 것이었다. 이제 세계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는 것처럼 보였다. 줄기세포만 주입하면 모든 게 치료되는 재생의학의 시대가 몇 발자국 남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복제된 줄기세포가 바로 치료제가 되는 것도 아니며, 본인의 체세포에도 이식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하며, 줄기세포가 특정한 세포로만 분화하는 기술도 여전히 전인미답이다. 무엇보다도 줄기세포는 암세포로 분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위험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한 세대에 걸친 임상관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상관없었다. 황우석을 호위하는 언론과 정'관계는 '믿어라'고 했다. 그리고 2주 후 제보자가 등장했다. 제보자 '닥터K'는 묻는다. "국익이 중요한가요, 진실이 중요한가요?"
개봉 보름 만에 누적관객 140만 명으로 흥행 가도를 달리는 영화 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대사도 이와 같다. 영화는 허위에 마취된 시대를 두 시간의 상영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묘사한다. 매체의 한계 때문에 광기의 시대는 아주 작은 규모로 투영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면 저마다 입에서 탄식이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상지대 최종덕 교수는 이에 대해 '기획적 속임과 자발적 속음'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황우석은 자신의 연구에 난치병 치료라는 명분을 부여하고, 국부 창출이라는 민족주의, 애국주의, 집단주의를 내세웠다. 자기기만에 의한 이런 '기획적 속임'이 드러난 후에도 황우석 지지자들 사이에 집단적인 자기 기만, 즉 '자발적 속음'으로 전염되었다. 그 결과 사태에 대한 합리적 판단은 배제되었고, 국가나 민족이라는 의인화된 집단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병리현상이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황우석의 '기획적 속임'과 국민들의 '자발적 속음'을 연결해 주는 고리는 정'관계, 재계, 언론 등 줄기세포 신화에 이해관계를 같이하던 동맹자들의 충실한 복무였다. 신성장 동력을 의료산업에서 찾던 참여정부는 황우석 신화를 직접 썼다. 이를 주도했던 정치인과 관료들은 여전히 고위직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때 시작된 의료산업화는 현재 의료영리화로 이어지고 있다. 줄기세포의 경제 효과에 대한 환상은 바이오 벤처 자본의 한탕주의로 현재까지 이어진다. 언론은 '진실보다 국익이 중요하다'는 언어도단을 써가며 호위에 나섰다. 그때 열정적으로 복무했던 기자들 역시 여전히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황우석이 몰락하기 무섭게 이들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황우석에게 속은 사람만 있고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된 것이다. 물론 업계에서 퇴출당한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다. 당시 황우석 연구팀에서 묵묵히 연구를 진행했던 연구원들이었다. 실제 최초 제보자인 류영준은 배신자로 찍혀 수년간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병리과 교수가 되었다. 그가 진실을 이야기했기에 천문학적 규모의 피해가 미연에 방지되었으나 제보의 대가는 모질었다. 하지만 그는 "제보한 걸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으며, 10살 소년의 수술을 막은 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는 과연 개안하게 해줄 또 다른 제보자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황우석 사태에 복무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현재와 그 사태에 저항했거나 이용됐던 사람들의 현재는 여전히 '아니다'라는 대답을 하게 만든다.
이현석/의사·작가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