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

입력 2014-10-21 08:00:00

수원에 가면 나혜석의 거리가 있다. 근대 신여성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나혜석(1896~1948)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 최초의 엘리트 서양화가이자 시인, 조각가, 여성운동가였다.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그녀의 여성해방론은 당시의 가부장적 사회제도와 남성중심 의식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었고 결국은 이혼과 행려병자로 슬픈 생을 마감하게 된다. "어미를 원망하지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어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굴레에 희생된 자였느니라."나혜석의 절규다.

토머스 홉스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슨 일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보고, 이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선 개인들의 권리를 국가에 위임해 강력한 공화국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훗날 루소는 이러한 힘의 현실이 만들어놓은 사유재산제가 인간불평등을 초래했다고 보고, 공동선을 구현하기 위해 일반의지를 주장했다. 즉, 모든 권력이 신이나 한 군주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주장해 당시 현실정치나 종교적 권위를 무시해 한평생 탄압받고 가난과 고독 속에 외로운 지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옹호하려다 1633년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는 로마의 미네르바회의에서 자신의 지동설 신념을 포기하는 문서를 작성하여 낭독하게 되고, 자기 별장에 감금되어 여생을 보내야 했다. "슬프다…갈릴레이, 나를 앞선 모든 시대의 학자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였던 한계를 내가 명석한 논증을 통해 확대시켜 놓은 이 우주가 이제는 나의 육체적 감각 내 좁은 영역 안에 움츠러들고 말았구나." 73세 노령의 장님이 된 갈릴레이의 절규다.

나혜석, 루소, 갈릴레이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당시의 보편적 상식과 인습, 시대정신을 뛰어넘은 영혼이라는 데 있다. 그들 앞에 놓인 현실의 벽은 그들에겐 고통이고, 억압이고, 좌절이었다. 그들은 어떤 죄를 지은 것일까? 시대를 너무 앞서 간 것일까? 아니면 당시의 지배이데올로기에 갇혀 살기엔 너무 똑똑하고 자유로운 영혼이었을까?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세상의 요구와 자신 내면의 고해성사를 어떻게 끌어안을까? 어쩌면 예술은 금지된 향기를 사회가 용인하는 인생극장일지도 모른다. 오페라, 연극, 영화, 소설 등은 말하고 싶었으나 억제되었던, 행하고 싶었으나 비난받았던, 착하지 않은 일들을 넌지시 끄집어내 놓고 딴청을 피우는 것이다. 여기다 평론가는 못다 한 고백을 언어마술로 토해내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 가을, 한 편의 공연을 골라 시대를 앞서간 분들, 새로운 창조를 이끄는 분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의 영혼을 현실에서 잠시라도 놓아 줌은 어떨까?

시인'대구 수성구 부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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