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타분한 철학, SF영화로 읽다…『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입력 2014-10-18 07:28:38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마크 롤랜즈 지음/신상규'석기용 옮김/책세상 펴냄

SF 영화를 통해 철학을 보는 책이 출간됐다.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는 12편의 SF 영화를 철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봄으로써, 삶의 의미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난해한 철학적 문제들을 읽어간다.

2019년 로스앤젤레스에는 늘 비가 내린다. 지구는 이미 황폐해졌고, 지구 인구의 대부분은 '오프월드(off-world)', 즉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버렸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양한 유형의 부적격자들뿐이다. 이곳으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로스앤젤레스로 4명의 '리플리컨트'(Replicant)가 잠입한다.

리플리컨트는 생명공학의 산물로 로봇과 유기체가 결합한 휴머노이드 생명체다. 타이렐이라는 회사가 인간을 위해 만들었다. 이들은 오프월드에 살면서 위험하거나 비천하거나 혹은 사람이 그냥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존재들이다. 인간과 구별되지 않는 외모에 대단히 뛰어난 근력과 민첩성, 인내력과 지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수명은 4년에 불과하다. 왜냐고?

위험한 일, 더러운 일, 비천한 일 등 인간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감정이 없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감정을 갖게 된다. 리플리컨트를 만든 천재과학자 타이렐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에 안전장치로 수명을 4년으로 제한했다. 기계가 멈추듯 4년이 지나면 죽는 것이다.

로이, 프리스, 리언, 조라는 모두 자신들에게 주어진 4년 중 3년을 살아버린 리플리컨트들이다. 이들은 죽기 싫어서, 더 살고 싶어서,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자신들을 만든 타이렐을 찾아 로스앤젤레스로 잠입했다. 자신을 창조한 타이렐을 만난 로이는 "더 살고 싶단 말이야, 이 XXX아!"라고 외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감독 리들리 스콧)-

책은 이처럼 영화의 배경과 내용을 설명하고 철학적 질문을 한다. 로이는 왜 더 살고 싶은가? 로이는 왜 죽기 싫은가? 대체 죽음은 어떤 의미에서 나쁜 것일까? 죽음은 꽤 좋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가령 인구과잉을 누그러뜨려 주고, 유전변이를 막아주지 않는가. 인류사에 씻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악인의 죽음은 다른 사람에게 큰 혜택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죽음은 죽음을 맞이하는 당사자에게는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죽음은 당사자에게 해를 끼치는지도 모른다. 로이와 그의 동료 리플리컨트들은 그래서 죽음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들 대부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죽음이 당사자에게 나쁘고, 해를 끼치는 현상이라는 인식 아래에는 삶이 더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죽음이 나쁘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삶이 좋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규명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까지 말하고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논증을 들이민다. '죽음은 그것이 실제로 발생하기 전에는 우리를 해롭게 할 수 없다. 그리고 죽음이 발생한 뒤에는 그것이 해롭게 할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이 우리를 해롭게 할 수 없다면, 죽음은 나쁜 것이 아니다. 적어도 죽은 당사자에게는 그렇다.'

책은 이런 식으로 영화와 철학을 오가며 질문한다.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부조리와 인간의 상황, '매트릭스'를 통해 앎과 확신의 문제를 묻고, '터미네이터'를 통해 마음과 육체의 문제를 파헤친다. 그런가 하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통해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딜레마, '인디펜던스데이'를 통해 도덕의 범위, '스타워즈'를 통해 선과 악을 질문한다. 그런가 하면 '할로우 맨' 편에서는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지, '토탈리콜'에서는 인격 동일성의 문제를 지적한다.

이 책은 2005년 출간된 《SF 철학》(MEDIA2.0)의 원서 개정판을 새로 번역한 것이다. 이번 판본에는 영화 '반지의 제왕' 편을 새로 추가했다. 반지의 제왕에서는 도덕 상대주의 문제를 짚어본다. 책이 다루고 있는 영화를 본 독자라면 훨씬 더 재미있겠다.

450쪽, 1만8천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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