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이 시행 보름 만에 실패한 법으로 판명나고 있다. 소비자에게 보조금과 요금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게 한다는 입법 취지는 간데없고 오히려 소비자를 '호갱'(호구+고객의 비속어)으로 만들어버렸다. 단말기 보조금 상한제 도입으로 소비자의 통신요금 할인 혜택이 줄면서 단말기 구입 가격만 다락같이 올랐다. 반면 이동통신사는 보조금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돼 희희낙락이다. 도대체 이런 법이 어떻게 국회를 통과했는지 분통이 터진다.
지난 5월 국회에서 단통법이 통과될 때 215명의 출석 의원 중 단 한 명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래놓고 여야는 이제 와서 정부만 나무라며 개정안을 낸다, 국민에게 사과한다며 야단법석이다. 제 얼굴에 침 뱉기도 이 정도면 절망적이다. 이런 희극은 국회의원들이 단통법에 어떤 문제가 있고 예상되는 부작용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 밖에 안 된다. 우리 정치권의 무능과 무사안일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준다. 이런 정치가 법을 주무르고 있으니 국민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
국회의 졸속 입법, 졸속 통과는 이제 만성질환이 됐다. 아무도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지난 2013년 12월 31일과 새벽 사이 113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이 중 58%에 해당하는 65개 법안이 가결 당일 또는 가결 전날 제안됐다. 국회의원들이 그 많은 법률안의 문제점이나 부작용에 대한 검토는 차치하고 조문이라도 제대로 읽어봤는지 궁금하다.
의원 입법의 폭주는 이처럼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입법을 부추긴다. 15대 국회 때 1천114건에 불과했던 의원 발의 법안은 해마다 늘어 19대 국회에 들어서는 전반기에만 9천 542건으로 18대 전체 건수(1만 2천220건)의 78.1%에 달했다. 이는 수많은 날림 법안을 양산한다. 의원 입법은 법안 작성, 의원 10명 이상 서명, 국회 제출까지 3단계만 거치면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의원들은 공동발의에 서로 이름을 빌려준다. 이렇게 쌓은 입법 실적을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표시로 국민에게 내민다. 그러나 '김영란법' 같은 정작 필요한 법은 통과시키지 않는다. 이것이 지금 우리 정치권의 추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