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수밭/ 모옌 지음, 심혜영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1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 소설가 '모옌'(1955~ )이 1987년에 펴낸 자신의 첫 장편소설이다. '붉은 수수' '고량주' '개의 길' '수수 장례' '기이한 죽음' 등 5편의 소설을 '붉은 수수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묶은 것이다.
이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붉은 수수밭'(1988'감독 장예모'주연 공리)이 제38회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소설보다 먼저 유명해졌다. 이후 소설도 붉은 수수밭으로 불렸고, 이번에 심혜영 성결대 중어중문학과 교수가 새로 번역해 펴냈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중국 산둥성 가오미 지방을 배경으로 일본의 만행에 대항하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 때부터 아버지를 거쳐 다시 나의 시절까지, 불굴의 저항 정신과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았던 가족사가 담겨 있다. 붉은 수수밭은 '민족정신'을 상징한다. 온갖 자연재해를 극복하고 가장 높은 위치에 열매를 맺어 결실을 이루는 수수처럼, 온갖 험난한 격랑에도 굴하지 않는 중국 민초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가오미 지방은 모옌의 실제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다 생생한 묘사가 가능했고, 모옌 스스로도 "소설 속 격정이 넘치는 세계를 자유롭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자평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모옌은 붉은 수수밭 이전과 이후로 중국 문학을 구분 짓는 성취를 이뤄냈다. 모옌은 이번 한국어 개정판 서문에서 "도리를 벗어난 반란의 언어를 사용했다. 이런 언어는 중국 당대 소설 속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독자들은 낯설고, 신기하고, 자극적인 느낌을 경험했다. 또 중국 당대 문학 안에서 아무도 이야기한 적이 없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도 선명하고 전형적인 인물 형상을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간단히 말하면, 중국을 담아냈지만 그렇다고 익히 알려진 중국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생존의 위기 앞에 고단한 민초들은 한나라 말 삼국지의 시대에도, 송나라 말 수호지의 시대에도, 청나라 말 아편전쟁의 시대에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문학이 붉은 수수밭처럼 '욕망과 정의가 혼재된 복잡하고 흐릿한 인간성의 중간지대'를 그려낸 적은 없었다. 또 노벨상을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모옌의 문학에 대해 "보편적인 인간 조건에 대해 신랄하고 설득력 있으며 독창적인 묘사 및 파악을 통해 지난 100년 중국 역사의 잔혹성, 야만성, 부조리를 생생하고 깊이 있게 폭로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래서 붉은 수수밭은 현재 중국 문학 안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며,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고전'으로 자리해 있다. 642쪽, 1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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