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성추행, 차별하는 사회가 만든다

입력 2014-10-07 10:45:35

대한민국에서 성추행은 직업과 나이를 불문하고 벌어진다. 전직 국회의장부터 청와대 대변인, 정치인, 판사, 목사, 의사, 교수, 교사, 택시기사, 버스기사, 대학생.

성추행이라는 낱말로 뉴스를 검색하여 1분 만에 확인한 직업군이다. 기사화된 사건에서 확인한 사실들이 이러하다는 것이고, 크고 작은 회사의 사무실에서 직장 상사와 동료로부터 당하는 성희롱, 출퇴근 버스와 전철에서 낯선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성추행까지 더한다면 우리 사회의 성범죄 공간은 모든 생활 영역에 걸쳐 있고, 가해자 역시 일부 특정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의사, 교수와 같은 전문가들이 매일 한 명씩 성범죄로 잡히고, 강간과 강제 추행으로는 하루 걸러 한 명씩 검거된다는 통계가 발표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9월 25일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성범죄로 검거된 의사, 변호사, 교수, 종교인, 언론인, 예술인 6대 전문직 종사자가 2천132명이라고 발표했다. 경찰청 국정감사자료이다.

이 중 강간 및 강제 추행으로 검거된 사람은 전체의 절반을 넘은 1천137명이며 직업별로는 의사가 739명, 종교인 578명, 예술인 492명, 교수 191명, 언론인 100명, 변호사가 32명이었다. 6대 전문직이 전체 직업인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고 할 수 없다. 2007년 기준으로 의사가 국민 1천 명당 1.8명, 변호사가 0.17명, 판검사 전체가 5만 명을 약간 넘고, 대학교수가 약 6만 명을 넘는다고 하니 이들 전문직을 모두 합해도 50만 명도 되지 않는다. 남성경제활동인구가 1천 만 명이 넘는다고 했을 때 적은 규모에서 추출한 성범죄 통계인 셈인데 놀랍게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경제력으로만 치면 우리나라는 세계 15위다. 전체 GDP를 인구로 나눈 1인당 GDP 순위로 해도 세계 33위다. 여성부 홈페이지에는 2012년 우리나라 성불평등지수(GII)가 148개국 가운데 27위라는 자료가 올라와 있다. 모성사망률과 청소년 출산율, 여성국회의원 비율, 중등교육 이상을 받은 여성 비율,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로 측정해서 산출하는 수치라고 한다. 여성대통령까지 배출한 나라이니 아마 국제적으로 한국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더 올라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범죄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이고, 성추행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범죄가 특정 계층, 특정 그룹에 국한되어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문제의 원인이 일부 사람들에 의한 병리적인 현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사고와 태도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이제까지의 지적은 그럼 점에서 틀리지 않다. 여기에 더하여 사회적 역할이나 지위가 곧바로 권력의 크기로 해석되고, 권력의 크기에 따라 위계가 형성되는 풍토가 약자에 대한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직장 상사가 만나는 부하직원, 정치인이 만나는 기자, 골프장에서 만난 캐디, 의사가 만나는 환자, 목사가 만나는 신자, 교수가 만나는 학생. 이렇게 만난 사람들의 관계에서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서로의 역할이다.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 되는 것이지, 그 둘의 관계에서 위계를 구성할 하등의 필요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직장 상사, 정치인, 의사, 목사, 교수가 부하직원, 기자, 캐디, 환자, 신자, 학생을 동등한 인격적 주체로 간주하기를 포기하는 순간, 관계의 평등성은 파괴되고 관계에서 약자는 순식간에 성적 유희와 쾌락의 대상으로 추락할 위험을 가지게 된다.

우리의 현대사는 국민들이 평등한 관계를 경험할 기회를 많이 주지 않았다. 성별, 나이, 직업, 소득의 차이에 상관없이 인간을 존중하는 일상적인 문화는 참으로 더디게도 발전해왔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이 잔인하고 비열한 범죄인 이유는 인간을 성적 유희와 쾌락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존엄성을 무참하게 훼손한다는 데 있다. 우리 사회는 갖가지 면죄부를 동원하여 이 잔인한 범죄를 용서해왔다. 이제 스스로 존엄한 존재로 대접받고 싶은 국민들에 의해 근절될 때이다.

양난주/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과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