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원시인이 동굴을 들여다보며 들어갈까 말까 고민했을 때부터 인간은 미지의 것을 꺼려 왔다. 개를 좋아하는 나조차도 남의 요크셔테리어를 지나갈 때면 몸을 움츠린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사업문화 연구자인 호프스테드에 따르면 한국인의 불확실성 회피 지수가 특히 높다고 한다. 문제는 이 경향이 통일에 대한 생각까지도 회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건강 문제에 대한 최근 소식에 이 주제가 다시 불거졌다.
젊은 북한 지도자가 다리를 절며 걷는 것이 좀 아이러니한 일이다. 2000년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 선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걸음걸이를 한국 쇠퇴의 상징으로 나타냈기 때문이다. "은 불편한 다리를 절룩거리며 걸었다!! 어쩐지 연로한 이 허둥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뒤를 따라 사려 깊은 거동으로 걸으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중하고도 예의 바른 그 모습을 보았을 때…" ('만남'이란 북한 소설에서).
상황이 역전되었다. 처음에는 김정은의 젊음과 활기를 내세우더니 지금은 김정일 시대 때처럼 지도자의 '불편한 몸'을 들어 주민들의 동정심을 자극하려고 한다. 이번에는 이 전략이 실패할 것이다. 과로의 탓으로 돌리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생활 방식을 과감하게 바꾸지 않는 한 아버지의 나이까지 살기란 어려울 것이다. 통일이 한국에서 다시 화제가 될 만하다.
통일 직후의 독일에서 살아본 나에게는 통일에 대한 한국인의 논의가 답답하기 짝이 없다. 한국인 대다수는 북한 정권이 어느 날 붕괴한다고 해도 한반도가 독일식의 즉각적인 통일을 외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대신에 한국이 북한 과도기 정권과 몇 년 동안 협조하면서 단계적인 통일을 느긋하게 집행할 수 있겠다고 믿는다. 또 전문가 대부분이 5년에서 10년 사이의 기간을 추천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로는 '김일성 조선'이란 말이 잘 보여주듯이 북한 공화국의 모든 정당성이 김일성에 대한 신화에서 초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도자가 죽을 경우에는 곧바로 김일성의 피가 섞인 다른 자손이 집권을 이어가야 한다. 만일 그것도 안 되면 죽은 지도자와 가까웠던 인사가 이어가게 된다.
북한에서 김정은을 반대하는 개혁 지향주의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권력을 몇 개월 이상 유지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그런 정권을 오래 지지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남한 사람들이 왜 점진적인 통일을 원하는지는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백두혈통 독재가 붕괴되면 북한의 2천500만 명이 크게 두 진영으로, 즉 통일을 아예 반대하는 사람과 즉각적 통일을 요구하는 사람으로 갈라질 것이다. 소극성으로 유명한 동독인들도 1년을 못 참았다. 그러면 남한 사람 못지않은 성급함과 자식 사랑을 갖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이미 망한 공화국에서 5, 10년이나 얌전히 기다릴 것이라고 한국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통일에 대해서 논의하면 대한민국 헌법을 인용하는 쪽은 항상 외국인인 나이다. 제1장 제3조에 따르면 이 국가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 제2장 제14조는 모든 국민이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한다. 전쟁에 대한 위험성이 없어지는 순간부터 헌법이 보장하는 모든 권리를 북측 한국인들도 누리도록 해야 한다.
헌법을 그냥 무시하거나 미리 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한다면 다른 나라에 의한 북한 침략을 막을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약화된다.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통일을 마냥 미루려고 하는 한국에 대해 세계 여론이 아주 비판적일 것이다. 한반도 면적의 55%에 대한 영유권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독도 문제를 크게 외치는 대한민국이 얼마나 이상해 보일까.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나도 그렇고 내가 아는 다른 미국인들도 전부 동감한다. 그러나 점진적 통일에 대한 비현실적인 방안들을 세우는 것은 그 대박을 거두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즉각적 통일을 각오하고, 당분간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대책들을 준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브라이언 마이어스/동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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