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컬러풀 대구

입력 2014-09-30 07:59:43

1969년 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버클리대학은 주차장을 짓겠다며 주변 건물들을 헐기 시작했다. 학생과 주민들은 반대 의사 표시로 폐허 위에 꽃과 나무를 심었다. 집회가 확산되는 것을 막겠다며 로널드 레이건 캘리포니아 당시 주지사는 군대를 끌어들였다.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에서 젊은 여성 한 명이 나서서 군인의 총구에 무언가를 꽂았다. 꽃이었다. 이 모습은 폭압에 맞서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역사에 기록된다.

샌프란시스코는 인구 규모로 미국에서 14번째(83만 명) 도시이지만, '미국민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 1위로 늘 꼽힌다. 그 비결 중 하나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도시 분위기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백인 비중이 50%밖에 안 된다. 마이너리티의 도시이자 히피의 천국. 아시안'유대인'게이'예술가'보헤미안 등을 넉넉히 보듬는 곳이 바로 샌프란시스코이다. 그런 의미에서 샌프란시스코는 세계에서 가장 '컬러풀'(Colorful)한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외형상으로 샌프란시스코는 '요란하게' 컬러풀하지 않다.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금문교(Golden Gate Bridge)만 해도 그렇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인 금문교의 색상은 진한 오렌지빛 주홍색이다. 밤이 되면 금문교는 조명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고 바닷물에 반사돼 미의 극치를 이룬다. 오렌지빛 주홍색만으로도 금문교는 충분히 컬러풀하다.

세계적 관광지 산토리니섬을 떠올려보자. 에게해의 코발트 빛 바다, 푸른 하늘과 어울려 그림엽서 같은 풍경을 빚어내는 것은 파란 지붕의 하얀 집들이다. 흰색과 파란색만으로도 눈부시게 아름다울 수 있음을 산토리니섬은 보여준다. 우리가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세계적 도시나 명승지들의 색상도 의외로 단순하다.

대구시의 슬로건은 '컬러풀 대구'다. 회색빛 도시에서 벗어나 활기차고 젊은 도시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획일적이고 보수적인 도시 이미지에서 벗어나 다양성이 존중되는 '열린 대구'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아주 잘 만든 슬로건이다.

그러나 외형만을 놓고 봤을 때 대구의 도시 미관을 상징하는 대표적 색상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 색 저 색 화려한 색으로 치장한다고 해서 컬러풀해질까. 중요한 것은 색의 가짓수가 아니라 색들이 빚어내는 조화이다. 부조화스럽게 알록달록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컬러풀하고 아름다운 도시 대구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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