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도로 행복한 교통문화] 2부-도로 위 약자에 대한 배려…노인(하)

입력 2014-09-22 07:02:29

인적 드문 시골국도 매년 희생자 100명 육박

문경시 산양면 진정1리 923지방도 경로당앞에 설치된 노인보호구역. 고도현기자
문경시 산양면 진정1리 923지방도 경로당앞에 설치된 노인보호구역. 고도현기자

지난달 2일 포항시 북구 청하면 소동리 7번 국도에서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다. 도로를 건너던 A(89) 씨가 차에 치여 숨진 뒤 수백여 대의 차량이 시신 위를 지나간 것. 시내버스를 잘못 탔던 A씨가 엉겁결에 버스에서 내려 건너편으로 무단횡단을 했던 게 화근이었다. 처음 A씨를 친 강모(36'충남 서산시) 씨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달아났고, 뒤따르던 차량 수백여 대가 A씨의 시신을 그대로 타넘고 도로를 질주했다. 사고 조사를 맡은 경찰 관계자는 "A 씨를 밟고 지나간 차량이 적어도 500여 대는 넘을 것"이라며 "운전자들이 시신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경북 지역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노인들은 교통사고 위험에 언제나 노출돼 있다. 차량이 붐비는 시가지나 읍'면 소재지에서는 무단횡단이나 교통 규칙 위반으로 인한 사고가 빈번하고, 차들이 질주하는 도롯가를 걷는 노인들이 많지만 보행자를 위한 교통안전 시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 경운기 등 농기계를 타고 가다 차량과 부딪치는 사고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교통사고에 위협받는 노인 보행자들

경북 지역에서 노인들이 겪는 사고 중 상당수는 대로변을 걷거나 무단횡단을 하다가 발생한다. 숨진 A씨가 사고를 당한 장소는 왕복 4차로인 7번 국도다. 주요 간선도로인 이곳은 차들이 제한속도인 시속 80㎞를 넘나들며 속도를 낸다. 평소에도 사고가 잦아 '절대감속'이라는 주의 표지판이 붙어 있지만 신경을 쓰는 차량은 거의 없다. 도로 양편에 버스정류장이 있지만 가로등이 없어 해가 지면 보행자들은 위험에 노출된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경북에서 보행 중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은 노인 수는 2010년 94명, 2011년 85명, 2012년 88명 등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5시쯤에는 경주시 시래동 불국사농협 인근에서 도로를 건너던 K(90) 씨가 40대 남성이 몰던 승용차에 부딪혀 크게 다쳤다. 이곳도 왕복 4차로에 차량 통행이 빈번한 도로지만 무단횡단 차단 시설이 전혀 없어 사고가 빈번한 곳이다.

도로변을 걷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지난해 5월 20일 의성군 안계면에서는 K(75) 씨가 도로변을 걷다가 사고를 당했다. 차를 운전하던 50대 여성은 도로 오른쪽으로 걸어가던 2명을 차로 친 뒤 K씨를 그대로 밟고 지나갔다. 지난해 12월 18일 오후 7시쯤에도 문경시 영신동 A조경 인근에서 국도를 지나가던 C(73) 씨가 승용차에 치여 숨졌다.

노인들이 보행자 사고를 자주 겪는 이유는 이웃 마을 나들이나 경작지에 가기 위해 도로변을 걷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굽어 있는 농로에 비해 거리가 짧은데다 교통사고 위험에 둔감한 경우가 많다는 것. 경찰 관계자는 "노인들은 귀가 어두워 뒤에서 차가 접근하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하거나 알아채더라도 피하는 시간이 많이 늦다"면서 "인적이 드물고 어두운 농촌지역에서 과속을 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장날에는 도심이 무법지대

중소 도시의 도심이나 읍'면 소재지에서도 보행자 교통사고는 적지 않게 일어난다. 차량 통행량에 비해 도로가 좁고 복잡한데다 교통안전 의식도 낮기 때문이다.

이달 18일 오후 영주시 영주동 영일교차로. 왕복 4차로가 교차하는 넓은 도로지만 점멸 신호등이 전부였다. 인근 서천을 건너는 영주교를 지난 차들은 내리막길에 속도를 내며 쌩쌩 지나갔다. 하지만 이곳에 설치된 교통시설물은 점멸 신호등이 전부다. 이 때문에 행인들은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무단횡단을 한다. 출퇴근 시간에는 경찰이 수신호로 통제하지만 대부분 시간대는 무법천지다. 주민 김모(72) 씨는 "차량을 통제하는 기능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를 건너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전통 5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광시당네거리 일대는 교통지옥으로 변한다. 상인들이 2차로를 점령해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기 때문이다. 차량은 거북이 운행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시민들은 차량 사이를 넘나들며 무단횡단을 하기 일쑤다. 이러다 보니 보행자 교통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다. 영주경찰서는 지난해 가흥동 영일교차로와 영주동 광시당네거리 등에서 보행자 교통사고 30건이 발생해 39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올 들어서도 24건의 보행자 교통사고가 발생, 36명이 피해를 입었다. 도로교통공단 경북지부 이종달 안전조사부장은 "중소도시의 경우 노인들이 교통안전에 둔감하고 무단횡단이 잦아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며 "사고가 많은 지점들을 지자체별로 관리하거나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끊이지 않는 농기계 사고

경운기 등 잦은 농기계 운행도 농촌 지역 교통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예천에서는 올 들어 경운기와 관련한 교통사고로 2명이 숨졌다. 지난 3월 8일 오전 9시 10분쯤 예천군 지보면 도장리 앞길 916번 지방도에서는 L(49)씨가 몰던 승용차가 농로에서 도로로 진입 중인 경운기를 들이받아 B(69) 씨가 그 자리에서 숨지기도 했다. 지난 6월 18일 오후 2시 30분쯤에도 예천군 지보면 28번 국도에서 풍양면 방면으로 향하던 승합차가 앞서 가던 경운기를 추돌해 경운기 운전자 J(81) 씨가 목숨을 잃었다.

경운기 사고는 굴곡이 심하고 시야 확보가 어려운 지방도로나 갓길 없는 도로에서 주로 발생한다.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도로변에 조성한 화단이 오히려 경운기 운행을 방해해 사고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경경찰서 관계자는 "경운기 운전자들의 대부분이 노인들인데다 도로변 꽃 때문에 갓길을 이용하지 못해 사고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노인들의 오토바이 운행도 사고가 증가하는 원인이다. 지난달 25일 성주읍 예산리 택지지구 앞 네거리에서는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A(68) 씨가 승용차와 충돌해 목숨을 잃었다. 지난 1월에는 성주군청 앞 도로에서 B(75) 씨의 오토바이를 화물차가 들이받아 B씨가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경북경찰청 구진모 교통안전계장은 "경운기 등 농기계의 경우 오랫동안 운전을 했던 사람도 커브를 돌거나 클러치를 잘못 잡아 농로나 배수로에 빠지는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다"면서 "보행자들은 되도록 이면도로나 농로를 이용하고 야간에는 밝은 옷을 입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영주 마경대 기자 kdma@msnet.co.kr

장성현 기자 jacksoul@msnet.co.kr

성주 전병용 기자 yong126@msnet.co.kr

문경 고도현 기자 dory@msnet.co.kr

예천 권오석 기자 stone5@msnet.co.kr

포항 신동우 기자 sdw@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