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악순환을 끊자

입력 2014-09-22 07:52:05

미국의 경제학자 래그나 누르크세는 '빈곤의 악순환'(vicious cycl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저개발국에서는 자본 형성의 부족으로 인해 빈곤해지고, 그 빈곤 때문에 자본이 형성되지 않아 가난에서 헤어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소득과 자본, 빈곤과 건강, 빈곤과 교육의 상호의존관계에서 일어나는 3가지 유형을 소개하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발전지향적으로 가야 하는 것이 해결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악순환은 나쁜 현상이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악순환을 끊지 않고서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가 없다.

하지만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속담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가계 소득이 높을수록 수능성적이 높다는 통계가 나왔으니, 빈곤층에서 용이 나오기가 참 쉽지 않은 세상이다. 사교육이 넘쳐나고, 사회로부터 온갖 스펙이 요구되는 등 기회가 균등하지 못하니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몸에도 악순환이 있다. 만성통증이 그것이다. 만성통증 치료의 궁극적 목적은 통증의 원인이 되는 '통증의 악순환'을 끊는 것이다. 얼마 전 50대 여자 환자가 진료실을 찾았다. 하루 종일 서서 팔을 쓰는 일을 하는 그 환자는 어깨부위가 결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또 서서히 어깨가 굳어지면서 목 부위가 아프고 심지어 그로 인한 두통까지 오게 됐다. 진찰 결과 양쪽 어깨 근육이 돌처럼 단단하게 경직되어 있었고 주위 근육들에서도 통증유발점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렇듯 통증이 있을 때 우리 몸은 통증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 반응으로 교감신경이 긴장되면서 혈액 순환이 악화되거나 근육이 경직된다. 그렇게 되면 산소 부족이나 대사물질의 축적이 발생하면서 몸의 내부 환경이 흐트러진다. 내부 환경이 흐트러지면 흐트러진 부분이 새로운 통증의 발생 원인이 된다. 통증의 부위가 확대되는 것이다. 실제로 최초의 통증보다는 이 확대된 통증이 훨씬 강하고 고통스러운 경우가 자주 있다. 이것을 '통증의 악순환'이라고 말한다.

이 환자는 적절한 신경블록 치료로 많이 호전됐다. 흥분된 교감신경을 차단해 주면 혈액순환은 좋아지고, 경련으로 경직되어 있던 근육은 부드럽게 풀린다. 이렇게 해서 통증의 확대가 방지되면, 통증이 형성되는 악순환을 예방할 수 있다.

요즘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교육, 종교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부정부패, 갈등의 악순환으로부터 몸살을 앓고 있다. 신경블록을 통해 만성통증의 악순환을 효과적으로 차단함으로써 통증을 치료하듯, 우리 사회의 여러 곳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 역시 하루빨리 끊어 버릴 수 있도록 효과적인 처방전을 내놓을 때다.

이상곤 대구파티마병원 마취통증의학과 통증크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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