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通] '칠곡 이름 찾기' 운동 팔 걷은 배석운 씨

입력 2014-09-20 08:00:00

"한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 담긴 지명, 그걸 잊는다면 뿌리를 잃는 거죠"

팔거역사문화연구회 추진단장 배석운 씨가 칠곡 향교 명륜당 앞에서 칠곡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팔거역사문화연구회 추진단장 배석운 씨가 칠곡 향교 명륜당 앞에서 칠곡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내 돈, 내 집, 내 지위 등 내 것만 지키는 세상이다. 자신만의 것이 아닌 지역민을 위해 역사를 지키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다. 배석운(66) 씨는 잊혀가는 칠곡(대구 북구 읍내동 일대)의 이름과 옛 역사를 되찾는 일에 팔을 걷은 사람이다. 개인적인 이득을 위한 일이 아님에도 날마다 지역의 역사를 단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고자 동분서주한다. 지난 7월 말에는 팔거역사문화연구회가 문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연구회는 칠곡의 '이름 찾는 일'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역사를 잊지 않는 배 씨가 그리는 미래에는 희망이 있었다.

◆이름을 지켜야 하는 이유

대구시민들에게 "칠곡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일부는 칠곡군이라 답할 것이고, 일부는 팔달교 건너 북구 읍내동 일대를 말할 것이다. 이렇듯 '칠곡'이라는 지명을 두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없지 않다. 그래서 일부 칠곡 토박이들은 자신들의 고장을 말할 때도 "대구 칠곡입니다" 혹은 "북구 칠곡입니다"라고 해야 한다.

배 씨가 팔거역사문화연구회를 만들고 '칠곡 이름 되찾기 운동'에 나선 이유였다.

현재 법률상으로는 '칠곡'이 경상북도의 군 이름으로 명명되면서 북구 읍내동 지역에서는 사실상 '칠곡'이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강북' 혹은 예스럽게 칠곡의 한자 뜻을 풀어쓴 '옻골'이란 명칭을 사용한다. 급격한 도시화를 겪으면서 외지에서 들어온 주민들이 늘어나며 지명도 자연스레 변하고 있는 것이다.

배 씨는 7월 31일 팔거역사문화연구회를 발족한 뒤 칠곡향교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전문가를 초빙한 강연회를 열고, 대구 칠곡의 역사적 유래를 알리는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름이 사라지면 칠곡의 역사도 함께 잊힌다는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배 씨에게 지명은 중요했다. 지명이야말로 후손들이 고향을 찾아올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정보이기 때문이다.

"1992년 중국에서 한 한국인을 만났습니다. 중국에 거주하던 그는 제가 대구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대구 대추골에서 한 지인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더군요. 대구로 돌아와 대추골을 찾아다녔지만 못 찾겠더군요. 지명이 사라진지 오래되었기 때문이었죠. 수소문 끝에 오래 전 대구시 중구 지역에 '대추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중국분의 지인을 찾아주지는 못했지만 지명의 중요성을 이때 깨달았습니다. 지명이라는 것은 단순히 한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일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 씨는 "먼 타국에 있는 사람도 이름을 기억해 고향을 찾는데 내 고향, 내 지역의 이름을 지키지 못하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며 "지역의 역사를 되찾는 일이 이름을 지키는 데에서 시작해야한다고 그때 다짐했다"고 말했다.

◆칠곡의 '화려했던' 시절

이름이 잊히는 만큼 칠곡 지역의 역사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도 점점 흐려지는 것 같아 배 씨는 더욱 안타깝다.

"칠곡을 '대구의 보물'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유서가 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전의 화려했던 역사에 대해 아는 사람은 이제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거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눈에 드러나는 옛 흔적이 사라지고 있어요. 이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나 부모들은 칠곡이 얼마나 대단한 역사를 가진 지역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아요."

팔거역사문화연구회 사무실 안에는 시대별 칠곡지역 지도가 여러 종류 있다. 그 지도들 속에서 칠곡의 화려했던 옛 모습들을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었다. 현재 아파트 단지가 빼곡한 자리에는 지방사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주요 기관들이 들어서 있었다. 노동력과 조세를 걷던 권력기관 관아를 비롯해 국왕의 위패를 모셔두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마다 의식을 거행했던 객사, 가뭄이 들거나 역병이 돌면 제사를 올리던 성황당, 곡물을 보관하던 사창 등이 옛지도들 여기저기에 그려져 있었다.

그랬던 칠곡이 지방사의 구심점 역할을 잃게 된 것은 일제의 손아귀에 나라가 휘둘리면서부터였다. 1914년 칠곡군청이 왜관으로 옮겨지고 칠곡향교를 제외한 모든 기관들이 이 지역에서 자취를 감췄다.

칠곡의 오래된 역사를 말해주는 것은 주요기관 뿐만이 아니다. 1990년대 도시개발 당시 청동기, 철기 시대부터의 유적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전국이 왜적들에게 유린당할 때 명나라 지원군이 주둔한 경상감영이 설치된 곳도 칠곡이다. 그럼에도 어느 곳에서도 역사의 흔적들도 찾을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밝은 미래를 그리다

현재 팔거역사연구회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은 칠곡의 이름 되찾기와 함께 칠곡의 역사 흔적들을 되살리는 작업이다.

구암동에 들어설 도시철도3호선 제305호역 명칭을 '칠곡역'으로 지키는 것도 한 예이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이 내년 상반기 개통 예정인 가운데 칠곡역 명칭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지난해 12월 대구시 공공 용물명칭조정위원회에서 도시철도 3호선 30개 역 이름을 정하면서 북구 구암동을 지나는 305호역 명칭을 칠곡역으로 정했다. 그러나 올해 4월 칠곡역 인근 지역 주민들이 "칠곡역을 운암역으로 개명해달라"고 서명운동을 벌여 대구시와 철도건설본부, 시의회 등에 민원을 제기했다. 배 씨는 "일부 주민들은 역이름을 '운암역'으로 해야 한다고 개정을 요구하는데 역 이름은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이름이어야 한다"며 "지리, 위치, 역사를 가장 명확하게 반영한 명칭이 '칠곡역'"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북구 주민 6천200여 명은 15일 "칠곡역 명칭을 그대로 두라"며 서명운동을 펼치고 다시 민원을 제기했다.

배 씨가 추진하려는 일 중에는 '지역 교과서'를 만드는 것도 있다. 교과서라고 해서 책으로 된 지루한 교과서를 말하는 게 아니다. 도시 곳곳에서 옛 칠곡을 느낄 수 있는 흔적을 남겨 지역 전체를 살아있는 역사의 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칠곡도호부 관아를 재현하는 사업이 그중 하나이다.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매몰됐던 유적들에 이제는 제자리를 찾아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농업기술원 근처에 옛 칠곡도호부를 재현해 자라나는 아이들이 지역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배 씨의 최종 목표는 역사를 발판으로 삼아 지역의 밝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역사는 미래 발전의 동력이에요. 역사, 문화적 배경이 되는 칠곡지역의 문화유산을 잘 보호해서 후세에 물려주고 싶어요. 크게 바라는 건 없어요. 그저 저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더 칠곡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됐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배석운 씨는

1948년 대구시 북구 동천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66년 동안 줄곧 북구 칠곡에서 생활하며 지역을 위해 힘써 왔다. 북구 생활체육회장(1992년), 칠곡 테니스연합회 초대회장(1994), 대구 북구 해병대 전우회 초대 회장(1994) 등을 역임했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하고자 한민족문화교류협회 이사장을 맡아 문화교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현재는 팔거역사문화연구회에서 추진단장을 맡아 칠곡 역사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김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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