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名건축] <36>영양 주식마을 주곡교회

입력 2014-09-20 08:00:00

기와 속 홀로 콘크리트 전통·현대미 묘한 조화

전통마을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건축물로 보이는 노출콘크리트 외벽을 가진 주곡교회. 유서 깊은 전통마을에서 만나게 되는 간결한 현대미는 극한 대립으로 보일 수 있으나 보기에 따라서는 시대성의 다른 표현으로 건축적 조화로움을 꾀하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통마을의 저력으로 현대를 품고 함께 상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이.
전통마을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건축물로 보이는 노출콘크리트 외벽을 가진 주곡교회. 유서 깊은 전통마을에서 만나게 되는 간결한 현대미는 극한 대립으로 보일 수 있으나 보기에 따라서는 시대성의 다른 표현으로 건축적 조화로움을 꾀하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통마을의 저력으로 현대를 품고 함께 상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이.
주곡교회 예배당 모습.
주곡교회 예배당 모습.
도현학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도현학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에 위치한 주실마을은 1629년 호은공 조전 선생이 가솔들을 이끌고 정착하면서 한양 조씨의 집성촌을 이루게 된 곳이다. 현재 주실마을에는 약 50여 가구의 고택들이 남아있으며 청록파 시인인 조지훈의 생가인 '호은종택' 및 '조지훈문학관'이 있어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전통마을이다.

주실이라는 마을의 이름은 배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우물을 파면 배에 구멍이 생겨 가라앉는다는 풍수설에 따라 마을 사람들은 '옥천종택'의 우물물 하나만으로 모든 식수를 감당하였다 한다. 최근에 조성된 조지훈 문학관과 함께 더욱 유명해진 마을로 근대 초기 실학자들과의 교류가 활발했으며, 개화 개혁으로 이어져 진취적인 문화를 꽃피웠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영양읍을 지나 일월면을 향하면서 소나무숲이 있는 주실마을의 초입에 이르러서 마을을 바라보면 논밭을 앞에 두고 가로방향으로 길게 늘어선 한옥 기와들과 담장들이 가지런히 펼쳐져 있는 전통마을의 풍경을 고스란히 잘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마을 한가운데 전통마을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건축물이, 멀리서 봐도 일반건축물은 아닐 것 같은 노출콘크리트 외벽을 가진 순수한 입방체의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좀 더 자세히 바라보면 가장 높은 곳의 십자가를 보고서야 교회인 것을 알아볼 수 있다. 교회를 처음 대하는 첫인상은 마을의 경관과 다소 대비됨을 느낄 수 있으나 다시 돌아보면서 묘한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유서 깊은 전통마을에서 만나게 되는 간결한 현대미는 극한 대립으로 보일 수 있으나 보기에 따라서는 시대성의 다른 표현으로 건축적 조화로움을 꾀하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청록파 시인 조지훈 선생의 '승무'의 한 구절이다. 주곡교회의 형상은 마치 승무를 추는 비구니의 하얀 고깔과도 같이 정갈한 모습을 하고 있다. 건축물의 형태를 구상적 대상으로 비유함은 표현주의적 모방으로 유치함의 표현일 수 있어 이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에게 실례가 될 수 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일차원적인 직관으로 전통마을의 기와와 건축재료들이 나타내는 경관적 이미지와 교회의 형상이 주는 표현성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더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조지훈 문학관 앞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마을의 흙 담장을 따라 한참을 돌아 교회 앞에 이르는 길은 교회를 찾기 전 순례의 길을 연상 할 수 있는 만큼의 수고스러움을 요구한다. 교회입구에서 바라보는 본체의 육중함은 교회의 규모에 비해 크게 느껴지는데 이는 언덕길을 오르면서 올려다보는 각으로 인한 시각적 과장 때문이다. 교회입구에 다다르는 길 또한 정방향의 램프 길을 따라 둘러가게 함으로써 교회에 다다르기 전 마음가짐을 다스리게 한다. 마치 산속의 절에 다다르는 여정에서의 긴 동선과도 같은 의도된 동선일 것이다.

입구에 이르면 예배당에 들어서기 전 왼편에 작은 입방체의 대기실을 두었으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겹쳐진 기와 선들과 산과 들로 펼쳐진 풍경은 방문자들이 마을의 한가운데 있어 하나가 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예배당 안에 이르면 생각보다 작은 내부를 보면서 친근함을 느낄 수 있다. 유럽의 많은 성당과 국내의 대규모 교회들의 예배당에 들어서면서 공간의 스케일감에 압도당해 상대적으로 작아진 자신에 의해 경건함을 넘어 위압감마저도 느끼게 하는 공간이었다면 주곡교회 예배당의 공간 스케일은 편안하고 친근한 공간으로 느껴진다. 육성으로도 가능한 설교와 함께 서로 얼굴은 마주하면서 대하는 교감은 작은 교회의 진정함에 있어 충분하다.

본당의 상부에서 경사면을 따라 흘러들어오는 빛은 전면의 벽과 십자가를 적시고 있고 측벽의 원영, 삼각형, 사각형의 빛 통은 마치 빛을 조각하고 있는 듯하다. 외형과 마찬가지로 내부 또한 간결한 면으로 되어 있어 치장되어 있지 않으며, 소박함과 겸손함으로 신을 대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홀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소예배실과 화합실이 있으며, 선큰가든과 함께 지하임에도 자연채광으로 인해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다. 다시 홀에서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가면 최상부의 사각형틀 속의 십자가가 있는 옥상에 이르게 되며,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본당 내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벽면은 노출콘크리트로 마감되어 있으며 가능한 장식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어 기독교인의 검소함과 숭고함이 표출되어 있다.

교회를 둘러보고 작은 감동을 가슴에 안고 되돌아보면서 교회를 설계한 건축가와 교회의 건축을 허락한 마을 주민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종교건축을 설계하는 건축가들에게 있어 가장 큰 고민이 일반인들의 선입견인 것을 알 것이다. 서양의 교회가 지녔던 첨탑의 박공지붕과 벽돌로 지어진 교회의 이미지에서 최근에 이르러서야 현대성을 갖춘 다양한 교회건축으로 볼 수 있으나 아직도 교회건축의 선입견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 전통마을에서 이러한 건축물을 선택했다고 함은 적지 않은 건축가의 노력과 마을주민들의 협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통건축물로 가득한 마을 한가운데에 현대건축미가 돋보이는 건축물을 건축한 결과만으로도 조지훈 선생과 같은 분들을 배출한 주실마을의 저력과 마을주민들과 목사님의 식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최근 주곡교회의 리노베이션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주실마을 찾는 방문객 중에 주곡교회를 두고 콘크리트 벙커라 하는 사람도 있고 물탱크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 결국 철거를 해야 한다고 하는 이도 있다 하여 교회의 외벽에 기와라도 덮는다는 대안이 그중 한 예로 논의 중이라고…. 안타까움을 지울 수가 없다. 건축계에서의 전통에 대한 논의가 지금은 다소 식상함에도 불구하고 박제된 전통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전통이 되기 위해서는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주민들과의 협의를 거쳐 이미 지어진 건축물을 이제 와서 일부 사람들의 이견이 있다 하여 교회를 설계한 건축가와 논의도 없이 리노베이션을 논의하고 있다는 현실에서 전통에 대한 편협한 사고의 커다란 벽을 마주한 것 같아 안타깝다. 다름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아닌 배척과 단절로 일관하려 함은 이 시대의 화두가 아닐 것이다. 주실마을은 전통마을의 외형뿐만이 아니라 주민들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으로 보존만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대의 삶이 공존할 수 있는 마을로 보전되어야 할 마을이기에 좀 더 열린 마음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다.

주실마을은 근대초기 실학자들과의 교류와 함께 개화 개혁으로 이어진 진취적인 문화를 간직한 마을이다. 따라서 전통마을의 저력으로 현대를 품고 함께 상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길 바란다. 주실마을은 주곡교회가 있어 한층 더 고즈넉하고 포용력이 돋보이는 어른스러운 고향 같은 마을이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도현학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