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 강제징용 배상 진정 외면할 텐가

입력 2014-09-18 11:01:24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인 한국인 할머니 등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관련한 한국 법원의 조정을 거부했다. 광주고법이 피해자인 원고의 조정 신청을 받아들여 소송 당사자 간 합의를 권고했으나 가해 기업이 손사래를 친 것이다. 가해 기업의 조정 거부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비인도적이다.

미쓰비시는 조정을 거부하면서 징용에 대한 배상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결과 해결됐다고 했다. 협정 해석에 관한 문제는 사기업과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며 일본 대법원이 이미 피해 원고가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판결을 한 것을 들었다. 아베 정부가 제시한 '개별 기업이 대응하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따랐다.

하지만 한일 강제병합 피해자인 우리나라 법원의 입장은 다르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강제징용과 관련해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비롯해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전범기업인 미쓰비시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했다. 일본 기업들도 과거 일부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바 있다. 니시마쓰 건설은 2010년 일본 법원에서 개인청구권이 소멸했다는 판결에도 불구하고 일본 니가타에 끌려가 노역했던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183명에게 1억2천800만 엔의 배상금을 지불한 전력이 있다. 신일본제철 역시 지난해 우리 법원으로부터 배상 판결을 받았을 당시 "최종 판결이 나오면 배상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러나 일 외무상이 나서 '정부와 기업의 일치된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후 소송을 이어가고 있고, 지더라도 배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일을 시켰으면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회피할 수 없는 인도적 규범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가 나서 배상은커녕 조정조차 막는 심보가 고약하다. 그 사이에 연로한 피해자들은 소송 결과도 접하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원하는 것이 진정 피해자 모두가 숨질 때까지 버티는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기업 차원의 배상조차 막을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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