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께서 쉰이 넘어서 얻은 외아들이 선친이시다. '금이야 옥이야'는 말할 것도 없었다. 10리 길의 소학교를 고모들이 교대로 업어 통학을 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는 시골에서 자랐지만, 농사일을 배우지 못했다. 군 입대를 대신한 경찰 생활을 접고 고향에 돌아와서는 전답을 팔아 방앗간을 열었다. 그 덕분에 우린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 시절, 감나무 그늘 아래서 숯불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던 집은 드물었다.
아버지는 우리들을 엄하게 키우셨다. 당신께서 느끼셨던 '귀하게 자란 폐해'를 자식에게는 절대 물려주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대신 어머니는 무척 자상하셨다. 우리 형제들은 장성해서도 어려운 이야기는 어머니를 통해서 할 만큼 아버지의 영(令)은 특별했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맏이와 막내를 차별 없이 키우셨다. 먹는 것도, 용돈도 공평했다.
가난에 찌들지 않았고, 비교적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우리 남매는 특별히 우열감은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우애가 무척 좋다. 자기 자식들보다는 오히려 형제를 더 중요하게 여길 정도다. 예전에는 형편이 괜찮았던 중형(仲兄)이 형제들을 돌봤다면 요즘은 내가 살피는 편이다. 설사 섭섭한 일이 있더라도 먼저 손을 내밀면 마음의 문은 열린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세상에 핏줄만큼 미더운 존재가 어디 있던가.
재벌들의 핏줄 간 골육상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고 지금도 진행되는 곳이 많다.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단골로 오르는 '그들만의 리그'는 대개 재산을 둘러싼 타이틀 매치이다. 그들은 심지어 스스로 '콩가루 집안'임을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리기도 한다. 명예가 실추되는 것 따윈 안중에도 없다. 오직 승리에만 혈안이 되어, 오히려 여론을 업으려는 작태를 보이기도 한다. 여느 뼈대 있는 집안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을 그들은 서슴없이 한다.
재산이라고는 논 서 마지기 남기고 저세상으로 가신 우리 아버지, 살아생전 어디 가서도 술값 잘 내고 당당하셨지만,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은 거의 남기지 않으셨다. 아무 대책이 없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위해 연금은 들어 놓으셨다. 지나간 명절에도 형제 간에 모여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명절 때마다 재물 다툼 때문에 반목하고 질시하는 집안과는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아무래도 재산이 좀 있었다면 견물생심 아니었겠는가. 새삼 선친의 선견지명에 존경심을 가질 뿐이다.
장삼철/(주)삼건물류 대표 jsc10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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