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역사/니콜라스 A. 바스베인스 지음/정지현 옮김/21세기 북스 펴냄
2000년 종이의 역사를 담은 책이 출간됐다.
인쇄술, 나침반, 화약과 함께 종이는 중국의 4대 발명품 중 하나다. 105년경 중국 후한(後漢)의 채윤이 처음 종이를 만들었으며, 751년에는 중앙아시아, 793년에는 바그다드까지 전파됐다. 14세기에는 유럽 여러 지역에 종이공장이 들어섰다.
약 1천500년 전 종이가 세계로 전파되기 전까지만 해도 종이 만드는 방법은 비밀에 부쳐졌다. 그 시절 문명은 매우 느리게 발전했다. 그러나 제지기술이 세계 각처로 전파되면서 문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책은 '종이가 없었다면 산업혁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계와 철도, 수로, 건축 등 신기술에 대한 전문지식을 종이에 그려서 전달할 수 없었다면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전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불교'기독교'이슬람교 등은 종이에 인쇄한 경전을 통해 전 세계에 포교할 수 있었다. 가볍고 휴대하기 좋은 지폐가 없었다면 상업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종이는 문명을 가능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종이는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일회용 화장지는 이질'장티푸스'콜레라 같은 전염병을 급감시켰다.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 때 해마다 병사 1천 명 중 80명이 장티푸스에 걸렸지만, 1차 세계대전 때는 1천 명 중 3명으로 줄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0.1명에 불과했다. 손과 항문 사이를 차단한 종이 한 장의 성과였다.
종이는 전쟁무기로도 활용됐다. 미국 독립군은 성경책을 뜯어 만든 '종이 탄피'로 영국군과 싸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풍선에 종이를 덧씌운 열기구를 만들어 미국 본토를 공격했다. 일본은 1944년 11월 3일부터 1945년 4월 5일까지 약 9천 개의 '열기구 폭탄'을 띄웠다. 이 중 1천 개가 북아메리카에 도달했다. 열기구는 오리건 주 마을 인근에 떨어졌고, 한 여성과 5명의 아이가 사망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 본토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일본의 유일한 공격이었다.
종이는 그 자체로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다. 어떤 문제를 야기하거나 해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위에 기록된 문자와 그림은 다양한 의미와 가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만들어낸다. 가령 나치 독일의 지도자들이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데는 그들이 서명한 각종 서류가 핵심적인 증거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종이에 기록된 정보는 그야말로 핵폭탄보다 강한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현재 미국 국가안전보장국은 매일 12t에 달하는 기밀문서를 찢어 펄프로 만든 다음 피자 상자나 달걀판으로 만들고 있다.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되는 정보를 담은 종이를 파괴하는 것은 현대 정부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되었다.
종이의 가치는 그 위에 인쇄된 '무엇'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마르크화는 가치가 폭락하자 벽지로 사용되었다. 그런가 하면 1910년에 발행한 담배 포장지에 삽입된 T206 호너스 와그나 야구 카드 한 장은 280만달러에 팔렸다. 라파엘로가 1500년대 초반 그린 스케치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4천790만달러에 팔렸다.
모든 지성적 탐구는 머릿속에서 시작되지만, 종이에 옮겨진 후에야 완전하게 시각화되었다. 발명가들은 종이에 마음껏 스케치하고 손보면서 건물과 기계를 만들었고, 예술가들은 종이 위에 자신의 생각을 1차적으로 형상화하고, 수정했다. 종이가 없었다면 많은 지적 생산물은 나오지 않았거나 매우 더디게 나왔을 게 분명하다.
종이의 대량생산은 금속인쇄술을 탄생시켰고, 책과 신문의 보급으로 인류의 지적 능력향상과 정보교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많은 사람들이 종이 덕분에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종이의 탄생과 보급, 진화를 비롯해 종이의 미래까지 내다본다. 그야말로 종이와 관련된 온갖 사건들, 혹은 종이가 간여한 수많은 일들을 담고 있다.
524쪽, 2만7천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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