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경찰서장이 부하를 시켜 고압 송전탑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부적절하게 챙긴 돈을 적법하지 않게 뿌렸다가 들통나서 직위 해제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터졌다.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공공갈등의 현장을 정당하지 않은 돈으로 막아보겠다는 안이한 발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직위 해제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송전탑 23호기 건립을 반대하고 있는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청도 345㎸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추석 다음 날인 지난 9일 청도경찰서 보안과의 한 간부가 송전탑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 6명의 집을 찾아가 이현희 청도경찰서장 이름이 찍힌 돈 봉투를 건넸다. '이현희 돈 봉투'에는 100만 원 내지 5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이 가운데 두 명의 주민에게 건네려던 500만 원, 300만 원이 거절당했다. 다른 4명의 송전탑 반대 주민에게는 100만 원 내지 300만 원짜리 돈 봉투가 전달됐다.
선거 때마다 돈 봉투 사건으로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청도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그것도 경찰에 의해 저질러졌다. 총 1천600만 원에 이르는 돈의 출처는 한전이다. 이현희 전 청도경찰서장이 송전탑 건립을 반대하는 청도 삼평 1리 주민 설득 활동과 농성 과정에서 다친 할머니 치료비 명목으로 한전에 돈을 받아 한전 명의가 아닌 본인 이름을 찍어 돌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송전탑 반대를 돈으로 막으려 한다는 거센 비판과 함께 한전과 경찰이 결탁했다는 오해까지 불러일으켰다.
세월호 사태 이후, 각종 부정과 비리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민적인 공감대로 형성되어 있는 마당에 이런 불법을 근절시켜야 할 경찰이 이해관계자에게 '받아낸 푼 돈'으로 풀려고 시도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부의 국책사업에 대해 정당한 이유없이 공사를 방해하면 충분히 설득하되, 원칙은 법에 따라 공권력을 집행하는 것이 경찰의 할 일이다. 다만, 공권력 집행에서 부상자나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것은 기본이다.
송전탑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성과를 올리고 싶었다면 진심으로 그들과 소통하고, 다가서려는 노력이 앞서야 했다. 불행히도 이 전 서장이 경찰 간부로서 물의를 빚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문경경찰서장 시절, 문경군 내 가마를 돌면서 고가의 도자기를 받은 일과 연루되어 경질성 전보 조치를 당한 적이 있다. 습관성 아니냐는 소리가 그래서 더 설득력을 갖는다. 일벌백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