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범죄와 재·색·주·기

입력 2014-09-11 11:18:58

형조참의를 지내기도 했던 다산 정약용은 '조선의 셜록홈즈'라고 불릴 정도로 사건의 본질을 명확하게 꿰뚫어보고, 재판을 정의롭게 진행하기로 유명했다.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소송을 '뿌리째 확 뽑지 않고, 줄기만 뜯어낸 풀'에 비유하면서 뿌리를 남겨두면 다시 살아나서 한 사건으로 소송이 끊이지 않게 되어 결국 처리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다고 경계했다.

경주에서 소금장수 김외동이 김암외 등 군졸들과 시비가 붙어서 주먹다짐을 벌이다가 죽은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 보고서는 김암외의 말이 놀라서 소금장수를 차는 바람에 죽었다고 했지만, 다산은 즉각 검시를 한 뒤, 상처의 크기와 뼈의 상태를 살펴 말발굽 때문이 아니라 매질로 살해당했음을 밝혀냈다.

재판의 공정성이나 철저한 조사에 못지않은 다산의 업적은 살인 사건의 동기를 분석했다는 점이다. 다산의 분석에 따르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조선시대에 빚어진 살인의 가장 큰 동기는 재(財)'색(色)'주(酒)'기(氣)였다.

재는 재물이다. 색은 치정, 주는 과음'폭음, 기는 성질'성깔'자존심이다.

다산이 밝힌 살인의 가장 주요한 네 가지 동기인 재'색'주'기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살인까지 아니지만 재'색'주'기로 인한 범죄가 다반사로 터지고 있어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현역 서울시의원이 송파 갑부 살인의혹을 받고 있는 것은 재물에 대한 탐심이고, 현역 육군 장성이 주사(酒邪)로 인해 전역당하는 일까지 터졌다.

바바리맨의 스펙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는 야유를 받고 있는 전직 검사장을 포함한 검찰의 성 스캔들은 급기야 로스쿨 출신 검사 연수에 여자 수습은 여검사가, 남자 수습은 남검사가 맡도록 원천 봉쇄 조치를 취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기질 문제도 가볍지 않다. '가만 있으니 가마때기인 줄 아느냐'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은 누구나 한 성질 하는 사람이 많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욱하기 일쑤다.

다산의 분석처럼 우리나라의 중요 범죄가 재'색'주'기에 연결되어 있다면 이를 바로잡는 방법은 한가지밖에 없다. 내 마음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치유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도 명상록에서 자기 마음을 읽지 못하면 불행해진다고 경고했다. 현대판 심학(心學), 새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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