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ㅋㅋ클래식] 제목 없는 음악

입력 2014-09-11 08:17:01

필자는 학창시절에 소설책 대신 만화책을 샀고, 대학시절에는 취업에나마 도움이 되리라는 핑계로 차라리 참고서를 구입했다. 그것을 현명함이라 여기며 독서와 담을 쌓고 지냈더랬다. 교양 있는 사람이 되고자 그나마 유흥비 아껴 교양서적 두어 권씩 사기 시작한 것도 아마 철이 조금씩 들면서였으니 뭐 그리 오래전의 일도 아니다. 그때는 그저 책방에 들러 표지 디자인이 좀 있어 보이는 제목의 책들을 무작정 읽곤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보다 밀려드는 지루함에 못 이겨 책을 덮기 일쑤였다. 말 그대로 '무작정' 독서였다.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또 내가 무엇을 읽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로, 제목이 근사하다는 이유로 책을 읽었다.

클래식 음악 감상도 두꺼운 교양도서 하나 읽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지난 편에 클래식과 친해지려는 이에게 얇은 책으로 독서 습관을 키워나가는 것과 비슷한 이치를 핑계로 짧고 선율적인 클래식 음악 듣기를 추천했다. 보통 그러한 곡에는 저마다 이름이 있기 마련인데 오늘은 이름 없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무작정 덤볐다가 쉽게 따분해지는 그 긴 음악 말이다.

제목 없는 음악? 가령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d단조, 작품번호125번'을 예로 들어보자. 제목이라 함은 작품 내용을 대표하는 의무를 가진다. 그저 '구성에 따른 음악장르, 작곡가의 해당 장르 내에서 지어진 순번, 곡을 이루는 조의 이름, 작곡가 일생의 작품들을 총망라한 일련번호'로 이루어진 이것은 제목이 아니다. 과자로 치자면 과자이름보다 포장지 뒤의 구성 성분이라든지 바코드 숫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암기가 뛰어나지 않은 사람으로 하여금 주눅들게 하는 이러한 음악, 일컬어 절대음악이라 한다. 표제 음악과 비교되는 이 음악은 (물론 예외도 있지만) 오직 음 구성만으로 이뤄져 있으며 작곡가는 소리 외에 그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는다. 절대음악은 교향곡과 더불어 소나타, 협주곡 등이 있는데 대개 4악장으로 이뤄져 있다. 악장에는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가 있고, 또 그 안에는 도막으로 나뉘어 있다. 다시 도막은 동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선율적 동기를 1주제, 곧이어 조화롭지만 한편으로 대조되는 부분이 2주제라 흔히들 말한다.

소설에서 주인공을 통해 우리가 기승전결을 느끼듯 음악에서 선율이 종결에 치닫는 그 과정은 기승전결로 연결돼 있다. 소설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감상에 어려움이 따를 수는 있지만 상상의 여지는 더 많은 추상적인 예술이다.

독서에도 저마다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필자 역시 자체 터득한 방법으로 무턱대고 책을 사서 머리맡에서 덮어버린 그 책들을, 아직도 새 책처럼 상태가 너무 양호(?)한 그 책들을 새로이 읽어나가며 이제나마 독서의 매력을 조금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클래식도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무작정이 아니라 작정해야 가까워지는 클래식은 그런 음악이다.

이예진(공연기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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