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수도 지붕도 없는 집에 42℃ 더위…"평화도 갈증도 타는 목마름"
무장 군인들과 취재진을 실은 버스가 우크라이나 동부의'슬로비얀스크 시'의 변두리에 있는 '세메니브카'지역에 들어서자마자 파괴된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메니브카의 네거리, 한 때는 교통의 교차점으로 호황을 누리던 곳이 지금은 완전히 파괴돼 흉측한 모습만 하고 있었다. 시야가 닿은 곳 어디에도 제대로 서 있거나 성한 건축물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도로의 방향을 가리키는 콘크리트 이정표까지도 총탄에 떨어져 나간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버스가 도착하자 마을 주민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여름의 태양이 작열하면서 42℃까지 기온이 올라간 가운데 마을의 폐허 위에서 '도네츠크' 주지사 일행과 취재진들, 마을주민들 간의 모임이 진행됐다. 사실 이 지역은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이 격렬하게 전개되면서 주민들이 살 수 없는 전투지로 변했다가 7월 5일부터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슬로비얀스크 지역을 장악하면서 떠났던 주민들이 속속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도네츠크주의 주지사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수많은 주민이 그의 주위로 몰려들어 생활상 가장 큰 문제인 식수 문제를 간절하게 호소했다. 지난 3개월 이상 이 지역에는 식수 파이프가 포탄에 맞아 파괴되면서 식수 공급이 중단된 상태였다. 주민 중 한 여인은 주지사에게 대들듯이 항의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식수도 없이 살아왔다. 당신들이 포탄을 쏴서 이런 상황이 온 게 아니냐?"라고 주지사를 향해 고함을 질러댔다. 사실 이곳이 파괴된 원인은 이곳이 반군의 거점 지역으로 지목되자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집중적으로 포를 발사했던 지점이다. 당연히 일대의 모든 시설물들은 파괴됐고 주민들은 가재도구를 놔두고서 몸만 빠져나와 피신해야 했다. 여인의 항의 태도가 도를 넘어서자 취재진 중 한 명이 여인에게 "물도 없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나? 우물이라도 있을 것이니 그곳으로 가보자"라고 재촉하자 여인은 항의를 멈추고 도망치듯 뒤로 빠져나갔다. 파괴된 가옥 중 한 채의 지붕 위에는 두 명의 목수들이 지붕을 고치는 모습이 보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지붕을 수리하는 일이 쉽지 않은 듯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도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전후 복구문제를 다루는 일이 쉽지 않은 듯 주지사도 한동안 할 말을 잃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주지사의 보좌관인 알렉세이는 "현재 우크라이나 연방정부의 예산이 모두 전쟁에 집중되는 바람에 지역의 전후 복구를 위해 할당된 예산 자체가 없는 상태"라면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주민들은 주지사에게 간절하게 호소하면 무엇인가 이뤄질 것이란 희망으로 많은 요구 사항을 얘기하고 있었다. 주지사는 자신의 역할이 이들의 호소를 경청함으로써 이들에게 심적인 위로를 해주는 일이란 사실을 잘 숙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파괴된 한 가옥만 방문해 취재진들에게 자신의 행적을 선전하는 형식적인 발걸음을 한 게 아니라 파괴된 여러 가옥, 심지어는 멀리 떨어진 다른 마을까지도 걸어서 방문해 주민들을 만나서 위로하는 수고를 했다.
마을 주민들은 필자를 보더니 자신들의 집을 보여주겠다고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한 여인이 자신의 파괴된 집을 뒤에 두고서 마냥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도저히 애처로워 보기가 민망할 따름이었다. 그녀의 집 맞은편에는 제법 규모가 큰 자동차수리센터이자 세차장이었던 건물이 완전히 폐허가 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파괴된 건물에는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었고 남아 있는 벽면의 무수한 총탄자국은 당시의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지난 4월 12일, 러시아와의 합병을 주장하는 반군들이 슬로비얀스크 시를 점령하면서 슬로비얀스크 시청 건물에는 우크라이나기가 내려지고 러시아기가 올라갔다. 곧 1천 명의 시민들이 모여 "러시아! 러시아!"를 외치면서 세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그 뒤 선출된 시장을 체포했고 친우크라이나 시민들을 추적해 잡아들이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들의 기세에 눌린 나머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었다. 석 달 동안 슬로비얀스크 시민들은 기간 시설이 파괴되면서 전기나 수도 공급이 끊어진 비정상적인 삶을 살면서 반군들의 살벌한 전횡이 판치는 세상에서 지내야 했다. 키예프나 다른 지역에 친지나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탈출을 시도했고 사정이 여의치 않거나 나이가 많은 노인은 참고 지내야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들의 교전이 치열해지면서 외부와 연결된 도로나 철로가 차단됐고 외부로 이동할 수 없는 고립무원의 지경에서 생활해야 했다. 시민들은 공습이나 포격이 지속되면서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면서 살아야 했다. 탈출한 인구가 늘어나면서 원래는 13만 명이었던 시의 인구가 7만 명으로 줄어들기까지 했다. 그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들어온 후 네일라 시테파 전 시장은 반군에 협력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현재 재판을 기다리고 있고 시의회 의장은 자택연금 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괴된 세메니브카 지역을 떠나 슬로비얀스크 시청으로 향했다. 시청 대회의실은 시민들의 대표들로 들어차 있었다. 대표들이 지역을 재건하기 위한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여서 뜨거운 열기가 회의장 밖에서도 느껴졌다. 회의장 출입문 앞에는 두 명의 군인들이 자동소총을 들고서 드나드는 사람들을 감시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어 여전히 평화의 시대가 오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표현해주고 있었다.
도네츠크 주지사의 발표가 끝나고 시장직무대행이 앞으로 파괴된 시의 재건 계획을 발표할 즈음, 갑자기 뒷자리에서 60대 노인이 일어나서는 삿대질을 해가면서 시장을 공격했다. "나는 두 달 반이나 이 도시를 위해 싸웠고 내 아들은 죽임까지 당했다. 나는 도저히 이 정부(현 우크라이나 정부)를 믿지 못한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이 정부의 정책은 따르지 않을 것이며 이 정부를 용인하지도 않을 것이다! 당신은 내가 선출한 시장도 아니다!"
그의 시장을 향한 성토는 장내 분위기를 완전히 얼어붙게 하였고 회의는 곧 막을 내렸다.
반군 치하에서의 석 달은 슬로비얀스크시의 많은 시민들을 적대적인 관계로 바꾸어놓았다. 시를 재건하기 위한 모임까지도 흐지부지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전의 공동체로 돌아가기까지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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