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1977~ )
당신이 아침부터 와서는 소리 없이 갔다, 첫눈
저녁에 한 번 뜨거웠다 하얗게 갔다, 연탄
고요를 쓸고도 남을, 바람
평행을 달리다가도, 지붕에 닿으면 무너지는 햇살
처녀 때도 못 타본 꽃가마를 이제야 타고, 상여
무너져 내리는 허공을 딱 자기 키만큼 떠받치고 있는, 산
낮 동안의 당신을 지우고, 더욱 깊어지는 일몰
그리운 것들이 왕창 몰려와, 모래 무덤이 되는 바다
하도 간절하여 한 번 닿으면 모두 몸빛이 되는, 고드름
당신과 내가 아는 그 모든 것들이 되어주는, 눈사람
온전한 허공이 되어야 뭍으로 내려않는, 연(鳶)
첫눈, 연탄, 바람, 상여, 산, 일몰, 바다, 고드름, 눈사람, 연(鳶)
충치가 빠지고 시리고 시린, 별이 내려앉았다
-시집 『도 하나의 입술』, 시인동네, 2014.
오랜만에 참으로 시적인 시를 읽었다. 여기에서 시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 언어가 아니라 감성적 언어로 이루어진 문장이라는 의미다. 시인의 눈에 포착된 사물은 감성의 포충망에 사로잡혀 감성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이 시에 제시된 몇 개의 사물들은 겨울에 그 개성적 모습을 잠시 드러내다가 사라지는 사물들이다. 그 사라짐을 시인은 장례식이라는 이미지로 감각한다.
가령 고드름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하강 이미지다. 그 하강이 너무도 간절하여 전체가 모두 몸빛으로 한색이다. 고드름을 이렇게 인식하는 시인의 감성이 역동적이며 신선하다. 연의 경우 하늘 높이 올라가서 안 보이게 될 때 추락한다. 연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을 허공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시인이 인식하는 사물 하나하나를 시인을 따라가며 함께 느끼는 것도 젊은 시인과의 유쾌한 겨울여행이 되리라. 끝줄의 충치와 별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독자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그게 독자의 권리다.
권서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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