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서-초보 농군 귀촌일기] 함께 사는 견공들

입력 2014-09-04 07:29:41

널어놓은 빨래가 햇볕과 바람에 바짝 마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당 있는 집에 사는 즐거움이 느껴졌다. 거기다 매화나무가 있어서 그 꽃의 화사한 빛이 눈앞에 어룽거릴 때는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앉으면 눕고 싶은 거여서 우리가 마당을 오갈 때마다 멍멍 짖으며 놀자고 보채는 강아지가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인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남편은 몸집이 작은 종류의 강아지보다는 대형견을 키우고 싶어 했다. 산책을 다닐 때 든든하기도 하고 함께 운동할 맛도 난다는 이유에서다. 암컷이 아닌 수컷을 선택한 것은 앞으로 태어날 새끼를 감당하기 싫어서였고, 처음부터 두 마리를 키우게 된 것은 순전히 강아지의 외로움을 배려해서다. 이렇게 우리 나름대로 신중하게 생각해서 기르게 된 것이 지금 우리 집 마당에서 살고 있는 황구인 장군이와 네눈박이 산이다.

우리 집은 대문이 없기 때문에 개를 마당에 풀어놓고 기를 수 없다. 거기다 한 달밖에 차이 나지 않는 수컷 두 마리는 늘 싸워서 한 공간에서 키울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장군이와 산이는 잘 놀다가도 돌변해서 으르렁거리며 싸우는데 한 번 물면 서로 상처를 입힐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이갈이가 끝나고부터는 싸움이 더욱 격렬해져 한 녀석의 눈언저리가 찢어지면 한 녀석은 다리를 절뚝거렸다. 할 수 없이 한 마리는 마당 동쪽에 묶고 한 마리는 서쪽에 묶은 뒤 경계선에는 칸막이를 두어서 겨우 얼굴만 닿게 하고 있다. 녀석들은 서로 얼굴을 핥다가도 금방 이빨을 드러내며 시끄럽게 짖어댄다.

시골에서는 개를 키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우리 동네에도 집집마다 개가 있어 그 집의 파수꾼 노릇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개를 길러 보니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며칠씩 집을 비우고 휴가를 간다는 생각은 엄두도 못 낼뿐더러 시내에 나갈 일이 있어도 허둥지둥 볼일만 보고 들어오기 바쁘다. 잘 있겠거니 생각하면서도 혹시 줄이 풀려서 둘이 싸우고 있지나 않은지, 밖으로 뛰쳐나가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오만가지 걱정에 마음이 조급해지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목줄에 묶여 있는 것은 개들이지만 개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을 받고 있는 내가 더 묶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개를 키우지 않았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활발한 장군이와는 달리 잔병치레가 많은 산이는 하루 중에 가만히 엎드려 있는 시간이 많아서 늘 마음이 쓰인다. 한 곳에 묶여 지내는 녀석들은 주인을 볼 때마다 밖에 나가자고 낑낑거린다. 그럴 때마다 마음껏 뛰놀게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여름이 되면서 입맛을 잃었는지 요즘엔 두 마리 다 사료를 잘 먹지 않는다. 점점 말라가는 녀석들의 모습을 볼 때면 괜히 개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두 마리가 다 커서 사료값이 많이 들겠다고 걱정해주는 지인들도 있지만 정작 사료값보다 약값이나 간식비가 더 많이 들어간다.

요즘도 마당 있는 시골집에서 산다고 하면 강아지를 줄 테니 한 마리 더 키워보라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평소 우유부단한 성격의 우리 부부지만 이것만큼은 딱 부러지게 거절한다. 한 번 맞이한 반려동물은 평생을 책임져야 하는데 그 일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걸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군이와 산이가 없었다면 제법 넓은 이 집에서 우리 부부의 생활은 적적했을 것이다. 따로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아는 사람과 낯선 사람을 구분해서 짖는 녀석들의 모습이 신통하기만 하다. 무뚝뚝한 남편도 집으로 돌아오면 먼저 개들과 눈맞춤을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온다. 우리를 볼 때마다 꼬리를 흔들며 안기고 싶어 하는 녀석들의 격렬한 반김을 보는 순간엔 어떤 사소한 근심도 낄 틈이 없다.

귀촌 생활은 3년쯤 지나야 적응이 된다고 한다. 아무 일이 없어도 이따금 낯선 시골생활이 주는 막막함에 기분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장군이와 산이가 있어 그 우울함을 훌쩍 털어버린다. 우리 집에 온 지 일 년 만에 녀석들은 마당뿐만이 아니라 우리 부부의 마음속에까지 잘 정착해 있다.

배경애(귀촌 2년 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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