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에 아이를 낳은 부모와 17살을 앞두고 선천성 조로증 탓에 80살 외모의 아들 이야기를 다룬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감독 이재용, 3일 개봉). 배우 송혜교가 밝고 씩씩하지만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를 아들로 인해 두근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미라 역을, 강동원이 걸그룹에 열광하고 아들의 게임기를 탐내는 철없는 아빠지만 누가 뭐래도 아들만을 생각하는 아들 바보 대수 역을 맡아 열연한 작품이다.
당연히, 아직 청춘 멜로물의 남녀 주인공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 같은데 한 아이의 엄마'아빠로 나오니 놀랄만하다. 특히 송혜교는 입에서 욕도 튀어나온다. 별명까지 '씨X공주'다. '욕쟁이'로 인기를 끌었던 김슬기나 걸쭉하고 차진 욕을 하는 중견 연기자 김수미가 생각나는 이도 있겠다. 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송혜교와 욕은 매치가 안 된다. 물론 송혜교가 시종 욕을 달고 다니는 인물로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꽤 인상 깊다.
역시 배우는 배우다. 영화 상영이 시작되면 송혜교는 어느새 아이만 생각하는 엄마로 관객을 울리기도, 웃음을 주기도 한다. 욕도 어색하지 않다. 혹자는 좀 더 걸쭉한 무언가를 기대할 법도 했겠지만 적당히 정제됐다. 앞서 이재용 감독은 "욕을 남발하고 싶진 않았다"며 "적당한 수준으로 미라 캐릭터를 잘 보여준 것 같다"고 만족해했었다.
송혜교(32)는 못내 아쉬운 듯 웃었다. "아무래도 욕을 더 해야 했죠?"라고 반문하며 "기왕 할 거면 좀 더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너무 짧게 나온 것 같다. 그래도 12세 관람가 등급이니 적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에서는 욕하는 것 말고도 귀여운 아줌마 같은 송혜교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현실에서도 귀여운 외모에 애교도 많을 것 같다고 하니, 그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사실 무뚝뚝한 편"이라며 "과거 남자친구를 만날 때도 그랬다(무뚝뚝한 편이었다)"고 했다. "나름대로 애교 있게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뭘 해도 무뚝뚝하다고 하더라고요.
'아, 난 애교와는 거리가 멀구나!'라고 생각했죠. 집에서는 더 해요. 엄마가 가끔 '애교 좀 떨어주면 안 되느냐'고 하실 때도 있어요. 다른 집에 갔다 오시면 그런 걸 부러워하시더라고요. 밖에서는 그래도 살갑게 대하는 것 같은데 가족한테는 더 안 돼요. 마음은 하고 싶은데…."(웃음)
송혜교는 엄마와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다. 말은 무뚝뚝하다고 했지만, 연기를 병행하며 학창시절을 보낼 때 엄마가 늘 옆에 있었다. 이혼 후 홀로된 엄마와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엄마와 친구처럼 지낸 게 미라 캐릭터를 잘 연기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촬영에 들어가며 미라에 몰입할수록 어디서 봤던 인물이 떠올랐다. 바로 그의 엄마였다. "엄마가 (극 중 미라처럼) 끼도 많고 노래도 잘 부르시거든요. 더 심하다고 할 수 있죠. 처음부터 이 캐릭터 모델로 엄마를 생각한 건 아닌데, 촬영할수록 엄마가 생각나더라고요. 촬영을 한창 할 때 엄마한테 '내 캐릭터와 엄마가 비슷하다'고 말했더니 엄마가 '웃긴 상황에서도 슬픔이 공존하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던 기억이 나요."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엄마도 아니다. 모성애를 연기하는 것도 고민이었을 것 같다고 하니 고개를 저었다. 송혜교는 "내 또래 친구 같은 엄마의 모습이라 부담이 덜 됐던 것 같다"며 "강하고 모든 걸 다 바치는 모성애가 있어야 하는 엄마의 모습이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다행히 "친구 같은 엄마라서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물론 밝은 모습에서도 슬픔이 중간중간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쉽진 않았다. 과거 영화 '오늘'에서 약혼자를 잃고 시종 깊은 슬픔에 빠진 비극적인 인물을 연기한 것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었다.
"실제 상황이라면 어떻겠느냐고요? 저는 아이와 친구처럼은 지낼 수 있어도 미라처럼은 못할 것 같아요. 책임감을 느끼고 아이를 지키며 살아온 것 자체만으로 대단하잖아요. 저도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친구 같은 엄마는 되고 싶어요. 이 일을 일찍 시작해서인지 사회에 있다 보면 모르는 것들이 많은데 멍청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죠. 그래서 아마 제가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쳐 줄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친구처럼 이성상담도 해주고 이것저것 얘기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아직 자신이 없네요. 헤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자칫 신파로 비칠 수도 있다. 송혜교는 "신파는 캐릭터들이 기본적으로 무겁고 우울한 사람들이 많은데 미라와 대수는 철이 없다. 코믹한 부분도 있는데 편안하면서 웃을 수 있는 장면들에서 슬픔이 오는 게 좋았다"며 "억지로 '너 울릴 거야'라는 느낌이 없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또 감독님이라면 영화와 잘 어울리는 세련됨과 고급스러움을 더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강동원과의 호흡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빠와 친하긴 하지만 솔직히 서로 잘 안 맞는 부분이 있어요. 얘깃거리나 주제가 있으면 서로 의견 일치가 안 되죠. '내 의견이 맞네', '네 의견이 틀리네'라고 서로의 의견만 강조해요. 싸운 적은 없지만, 어떤 이야기가 나오면 포털 사이트에 검색까지 하며 누가 맞는지 확인해요. 대수 같은 남편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잘 생겼으니 좋긴 해요. 재미있고요. 음, 또 뭐라고 얘기해야 하죠? 하하하."
후회 없이 20대를 보냈으나 연기적인 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는 송혜교. 다양한 캐릭터로 여러 가지 작품을 하지 못한 게 아쉽다는 그는 최근 작품에 대한 욕심이 많이 생겼다고 했다. "과거에는 더 잘 보이고, 많이 주목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더 잘 보이길 원하면서도, 촬영은 빨리 끝내고 놀러 가고 싶었죠. 책임감이 많이 있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중국에서 왕가위 감독님과 작업하고 나서 소중함이라는 걸 느꼈죠. 낯선 환경에 있어야 해서 괴로웠는데 끝나고 나니 어떤 공부가 됐더라고요. 예전에는 내 촬영이 끝나면 집에 가기 바빴는데 이제는 현장이 정말 좋아요. 상대방이 어떻게 연기했는지도 궁금하고요. 어려운 신이 있으면 '어떻게 하면 더 풍부하게 끌어내 볼 수 있을까?' 고민도 하게 됐죠. 예전에는 사람들이 별로 안 나오는 영화에 많이 나왔는데, 이제 멀티캐스팅 영화에도 출연해서 다양한 모습도 보이고 싶어요."
송혜교는 최근 탈세 논란으로 누리꾼에게 뭇매를 맞았다. 세무사의 실수였다고 입장을 밝혔으나, 폭격의 대상이 됐다. 그는 감내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불찰이었으니 대중의 안 좋은 시선은 당연한 거로 생각해요. 쓴소리와 충고는 들어야죠. 앞으로 더 주의하려고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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