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한 가정집 욕실에 둥지를 튼 뒤 새끼 6마리를 품고 지내던 붉은머리오목눈이(본지 5월 9일 자 2면 보도)가 4개월 만에 둥지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갔다.
지난달 22일쯤 안동시 안기동 안기 2길 한 주택. 박경훈(28) 씨는 오랜만에 안방 욕실 창가에 사는 새들을 보려고 욕실 문을 열었는데 새들이 온데간데없었다. 창틀에는 얼기설기 지은 둥지와 깃털 몇 개만 남아있을 뿐 어미 새와 함께 살아가던 붉은머리오목눈이 일곱 가족은 새끼들이 모두 성장해 둥지를 옮긴 것이다.
박 씨는 "7월부터 지난달까지 내내 비가 와서 새들이 창틀과 마당을 들락날락 거리다가 깃털이 흠뻑 젖곤 했다. 식구들은 새들이 날갯짓을 배우는 것으로 판단해 거실과 연결되는 욕실 문을 열어두었는데 그때부터 두 달간 우리 집은 쑥대밭이 됐다"며 웃어 보였다.
연일 장맛비에 날갯짓을 배우지 못한 새끼 새들은 욕실에 설치된 빨래 건조대에 매달려 있다가 거실로 날아들며 날갯짓을 배웠다. 거실에 나온 새들은 책과 우편물 등을 입으로 물어뜯고 여기저기에 배설물로 영역표시(?)를 해놓는 바람에 박 씨의 어머니는 온종일 뒷정리로 바빴다.
새끼 새들은 날이 갈수록 나는 거리도 늘어났고 날갯짓을 할 때마다 털이 빠지면서 어미 새와 비슷한 모습으로 성장했다. 식구들을 자주 본 덕분에 사람이 거실에 앉아 있는 날이면 손을 부리로 찍거나 손등에 앉기도 하는 등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식구 중 집에 가장 많은 머무는 박 씨의 어머니한테는 새끼 새들이 특히 더 따랐다. 거실이나 마당에서 일을 할 때면 새끼 6마리가 모두 나와 그 주변을 서성이며 따라다니기도 했다.
박 씨 어머니는 "어미 새는 밖을 다니며 먹이를 물어와 새끼들의 배를 채워줬고, 나는 거실과 마당에서 새끼의 날갯짓을 가르쳤다. 새끼 새들이 좋아하는 건조대를 옮겨주며 나는 연습을 시켰다"고 했다. 새가 떠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박 씨 가족은 새 둥지를 정리했다. 인근 동물병원에서 행여 새가 다시 찾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그간 둥지를 치우지 않았던 것이다.
박 씨는 "지난해와 올해 우리 집 욕실에는 연이어 새들이 둥지를 틀고 떠나갔다. 워낙 허전하고 섭섭해서 식구들은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욕실부터 확인하곤 했다. 흥부전에 보면 제비가 착한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줘 금은보화를 준 것처럼 이 새들은 우리 식구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줬다"고 했다.
안동 전종훈 기자 cjh49@msnet.co.kr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라고도 불리는 이 새는 몸길이가 약 13㎝로 몸의 윗면은 붉은 갈색이며 아랫면은 누런 갈색이다. 둥지는 흔히 관목이나 풀 속에 틀지만 농가 울타리 안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알은 4월에서 7월 사이에 한 배에 3∼5개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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