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윤 일병 사망 사건' 이후 내놓은 병영문화 개선 대책을 놓고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국방부는 최근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혁신위)의 4가지 우선 조치 과제를 이달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이달 들어 계급별 공용 휴대전화 사용을 일부 부대에서 시범 운용하고, 평일 일과 시간 이후에 면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세부 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안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병영 현실과 동떨어진 조치
국방부는 생활관 내 이병, 일병, 상병, 병장 계급별로 병사 대표자를 지정해 공용 휴대전화를 지급한 뒤 같은 계급의 병사가 대표자에게 이 전화기를 가져다 사용토록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부대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얼마나 활성화될지 의문이 제기된다. 2개월 전 전역한 김모(23) 씨는 "같은 계급이라도 선임자가 더 무섭고 위계질서가 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선임자가 휴대전화를 갖고 있으면 쓰고 싶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데다 통화 내용을 물을 게 뻔해 부대 내 문제를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중대급 단위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팅 사이트와 인터넷 카페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병사들의 인터넷 PC이용 여건 개선이 선행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병사 한 명이 사이버지식방(병영 내 PC 이용실) PC를 이용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18.6분에 불과하다. 또한 현재 병영 내 PC는 인터넷 회선 용량 부족과 PC 자체 용량의 한계로 인터넷 속도가 상당히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올 1월 전역한 대학생 박모(22) 씨는 "선임자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면 졸병들은 선임자들의 눈치가 보여 인터넷 사용을 거의 못한다. SNS가 활성화되려면 부대 내 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평일 면회도 도마에 올랐다. 현실적으로 생활에 바쁜 부모들이 일부러 시간을 내서 면회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아들이 군 복무 중인 한 아버지는 "생업에 바쁜 가족들이 평일에 그것도 일과 시간 이후에 빠듯한 시간에 맞춰 자식들을 면회가기는 쉽지 않다"며 "차라리 신병 때부터 한 달에 한 차례나 분기별 한 차례 정도 자유롭게 외박'외출을 허용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했다. 휴가 중인 김모(21) 상병은 "일과가 오후 5, 6시에 끝나면 점호 때까지 3, 4시간밖에 면회할 시간이 없다. 군에서는 청소나 여러 잔업으로 내무생활도 쉴 틈이 없는데 선임자 눈치까지 봐가면서 면회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고 했다. 실제로 육군 제50보병사단이나 육군 제2작전사령부는 1일부터 평일 면회를 허용했지만 신청자가 한 명도 없었다.
◆지휘관에게 책임 묻는 게 능사 아니다
예비역들과 전문가들은 군 당국의 병영문화 개선 방안과 관련, "시도는 좋으나 실효성은 장담할 수 없다"며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예비역 장교 강모(27) 씨는 "휴대전화를 도입하고 후임병에 대한 선임병의 명령 금지, 군 파파라치 도입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군 내부의 뿌리깊은 악습이 바뀔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분대장만 명령을 내리게 할 경우 병사들이 선임병을 무시할 우려가 있고 여러 명이 짜고 마음에 안 드는 선임병을 거짓 고발하는 등의 병폐도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비역 장교 김모(30) 씨도 "과거처럼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이데올로기만으로 군 기강과 책임감을 동시에 확립하기는 어려워졌다"며 "의무병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군이 사병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합리적인 월급이나 포상휴가 등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예비역 중장인 정두근 (사)상호존중과배려운동본부 총재는 병사 상호 간 존댓말을 쓰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도 병영문화를 개선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 총재는 "32사단장을 할 때 '존댓말 문화운동'을 펼쳐 큰 성과를 냈다. 선임병과 후임병이 존댓말을 하니 폭언과 욕설이 사라지고 구타와 가혹행위가 줄었다"고 했다.
김종열 영남대 군사학과 교수는 "군-병-부모 간 원활한 소통을 보장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변화다. 하지만 이번에 내놓은 대책은 병사 개인의 인권을 지키면서 군 기강을 유지하는 것보다 처우 개선에만 초점이 맞춰졌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소대장'중대장 등 초급 간부에 대한 생활관 지도 요령을 철저히 교육해 이를 병사 관리에 바르게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미국의 경우 지휘관이 문제를 일으킨 병사를 신고하고 당사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권한을 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문제 병사에 대한 책임을 지휘관에게 묻는다. 그러다 보니 지휘관은 징계를 피하고자 부대 내 문제가 생기면 쉬쉬하기 바쁘다"고 했다.
전창훈 기자 apolonj@msnet.co.kr
홍준헌 기자 newsfor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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