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으로] 사람 속으로

입력 2014-08-30 08:00:00

'사람만이 희망이다'란 말이 있다. 시인 박노해가 1997년에 내놓은 옥중 에세이 제목으로 유명한 이 문구는 언젠가부터 페이스북 커뮤니티의 이름이나 지자체의 브랜드 네이밍(naming)으로 쓰일 정도로 대중에 널리 알려진 표현이다. 박노해 시인의 성찰과 실천적 삶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마치 시대의 화두처럼 이해되어 온 이 말이 왜 오늘도 여전히 우리 시대의 언어가 되고 있는가. 돈으로만 가득한 현실, 이기와 불통의 정치 한가운데서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눈물짓고 절망하지만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발견이 우리 모두의 발견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최근 '사람 도서관', '사람 책'이 뜨고 있다. 사람 도서관이란 종이책이나 디지털 정보 대신 사람의 지식, 정보, 경험 등을 책처럼 대여하는 신개념 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열람하듯 사람을 책처럼 열람하는 방식이다. 덴마크 출신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Ronni Abergel)이 2000년 덴마크에서 열린 한 뮤직페스티벌에서 창안한 것으로, 덴마크의 청소년폭력방지 NGO에서 일하던 그는 사람 책을 통해 소통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사람 사이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허물어 보고자 하였다. 대구시립중앙도서관에서도 10월부터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사람이 대출 대상이 된다는 다소 생소하지만 재미있는 발상은 생각해보면 사람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그 깊은 곳에 품고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긍정과 공유의 철학이 바탕에 있어야만 가능한 이 일은 사람의 가치를 중심에 둔 제도이자 사람 사이에서만 실현할 수 있는 흥미로운 공유의 과정이다. 스스로 대출의 대상이 되는 열린 자세와 사람 간의 공유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의 만남, 내 주변 사람에 대한 관심과 그 사람에 대한 가치 발견을 전제로 하는 사람 도서관은 그러므로 사람이 생각의 재료가 되고 만남의 이유가 되며 가치가 되는 일이다.

'위즈돔'(wisdom)이란 국내 최대의 사람 도서관을 운영하는 단체가 있다. 사람 책과 사람 간의 자유롭고 흥미로운 만남을 주선하는 플랫폼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다. 현재 1천 명이 넘는 사람 책과 2만 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는 '위즈돔'은 평범한 사람들의 경험적 가치를 공유의 가치로 만들어보고자 한상엽 대표 등 몇몇이 설립한 것이다. 실제로 '위즈돔'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 책들이 가득하다. '고급백수' '한때 외교관이었던 우동집 사장' '쉰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아줌마' '도시양봉가' 등 모두 우리들의 살림살이를 들춰보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사람 책으로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평범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들이 사람 책이다. 또한 '위즈돔'에서는 사람 책을 중심으로 지역의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재미있고 구체적인 마을 사람들의 속살 깊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다. 지역 공유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지역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들의 평범한 삶의 경험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사람 도서관의 시작이지도 모른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 우리가 사는 도시와 지역이 공유의 생활 방식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 일일 것이다 '1%를 위한 도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도시'를 이야기하고 '이웃의 느낌이 나는 거리의 인터랙션(일종의 대화)이 상업활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의 도서관이 바로 사람 도서관일 것이다.

지금 대구 중구에서는 3년째 '생애 자서전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로 약 50명이 넘는 지역의 어르신들이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이분들은 그 자체로 지역의 역사이자 기록이며 증거이다. 또한 진정한 만남의 주체이다. 지역에 '생애 도서관'이 하나쯤 생겨 자신의 생애를 뜨겁게 기록하고 있는 분들과 시민들의 만남을 주선해 보는 일도 좋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 사람이 희망이 되는 첫걸음일 것이다.

박승희/영남대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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