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운영자금 확 준다" 대구 사업장 10%만 가입

입력 2014-08-28 10:58:18

전문성 부족·경영 부실 부담

정부가 27일 2022년까지 모든 사업장에 퇴직연금을 의무화하는 '사적연금 활성화' 정책을 발표하자 영세기업은 곤혹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역 중소기업들은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아 정책이 제대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행착오가 많을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저조한 퇴직연금 가입

대구백화점은 2012년 직원을 대상으로 퇴직연금에 대해 설명회를 했다. 퇴직연금제도 도입에 따라 기존 퇴직금 방식에서 퇴직연금으로 전환했다. 기금운용사도 여러 곳으로 분산시켜 안정을 꾀했다.

초경합금전문 생산기업인 신생공업은 2012년 7월 퇴직연금에 가입했다. 이전까지의 퇴직금은 일괄적으로 직원에게 지급했다. 이곳 임원은 "경영자 입장에서는 장단점이 나뉘는 제도라 생각되지만 근로자에게는 퇴직연금이 안정적으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늦기 전에 가입해 기금 운용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대구 지역 전체 사업장 16만3천283개 가운데 퇴직연금을 이용하는 사업장은 총 1만3천173곳이다. 대구시 전체 사업장 가운데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부에 따르면 전국 평균 퇴직연금 가입률은 16%에 달한다. 그나마 2016년부터 의무가입대상이 되는 종업원 300인 이상인 지역 기업은 총 113곳으로 이 가운데 68곳이 가입을 완료한 상태다. 그만큼 기업의 규모에 따른 퇴직연금 가입이 차이가 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사업장 규모별로 퇴직연금 도입률에 차이를 보인다. 300인 이상 사업자는 가입률이 76%에 달하지만 10인 미만의 경우 11%에 불과하다.(그래프 참조)

영세기업의 퇴직연금 가입률이 높지 않은 것은 운영을 위한 전문성 부족, 경영 부실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한 중소업체 대표는 "퇴직연금은 회사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담스럽다. 근로자 수에 따라 일정 금액을 회사 외적인 부분에 지출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만회하려고 다른 부분에서 비용을 감소하려다 보면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기존 퇴직금의 충당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직전까지의 근로자 퇴직금을 정산하거나 이 금액을 퇴직연금 운영사에 지급해야 한다. 100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대부분 퇴직충당금을 미보유한 곳이 많다. 한 업체 대표는 "서류상으로야 퇴직충당금이 있는 것으로 돼 있지만 이미 회사일에 사용해 충당금이 5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퇴직연금에 가입하려면 개인 대출을 해서라도 2억원가량의 충당금을 구해야 할 판이다"고 하소연했다.

에이스이노텍의 경우 2008년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면서 이전 퇴직금에 대해 직원과 협의를 거쳐 순차적으로 지급했다. 한꺼번에 지불하는 것이 현실상 쉽지 않아서다. 이 같은 기업의 부담을 고려해 정부는 규모에 따라 의무가입기간에 차이를 뒀다.(표 참조) 기존 퇴직연금 전환을 위한 자금 마련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다. 또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30인 이하 영세사업장에 대해 가입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중기 퇴직연금기금제도를 2015년 7월부터 도입할 방침이다. 노'사'전문가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를 통해 자산 운용정책을 결정하고, 중기 퇴직연금기금제도에 가입하는 사업주를 대상으로 저소득 근로자(30인 이하 사업장의 월소득 140만원 미만)에 대한 부담금 10% 지원, 운용수수료 50% 지원 등 내년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재정지원을 실시한다.

◆금융권과 일부 근로자는 시큰둥

일부 근로자는 중간정산이 불가능해 퇴직연금이 '목돈'을 구하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한다. 한 근로자는 "갑작스럽게 병원비가 들거나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하는 등의 일에서 퇴직금을 받지 못하면 불편할 것이다. 또 노후에 생활비가 아니라 창업이나 투자를 하려는 이들에게도 퇴직연금은 걸림돌이 되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정부의 퇴직연금 활성화 방안에 대해 정작 연금을 운용할 금융권의 반응도 시원찮다. 가장 먼저 정부가 도입하려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의 경우 현행 계약형 퇴직연금 제도보다 운용 비용과 손실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개별 기업이 적립금 운용에 더 많은 결정권을 갖게 되면 그만큼 책임도 커지게 된다. 그 정도의 운용 전문성을 기금 수탁자가 갖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또 "결국 자산운용사가 메이저로 등장해 공격적 투자로 연금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했다.

관리 감독 등 운용 비용도 늘어나 규모가 작은 기업의 경우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단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기금운용 정책 등은 노사위원회가 결정하므로 관리부서를 만들고 전문인력을 채용하는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중소기업에는 어려운 일이다"고 했다. 연금 자산 운용 규제 완화도 마찬가지 위험을 안고 있다. 수익률을 높이려다 정작 중요한 연금 자산 자체에 손실을 입히는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규제를 무턱대고 완화하면 금융사가 수수료 수익을 노리고 위험 자산 투자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거나 투자 지식이 부족한 근로자가 충분한 이해 없이 위험도가 높은 상품을 선택해 손해를 보는 일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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