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 찜통더위로 유명한 대구에서 고군분투하며 근무하던 어느 날 오후였다. 이럴 때일수록 체력관리가 필수라 여긴 나는 평소와 다름 없이 체력단련을 하던 중이었다. 언제 어디서 어떠한 출동이 걸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강인한 체력은 우리 구조대원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에 게을리할 수 없는 일과 중 하나다.
한참 구슬땀을 흘려가며 운동 중인데 어김없이 출동지령이 내려왔다.
"○○구조대, 구조출동! 앞산 고산골 등산로 입구 부근 주택가에 고라니 출현! ○○구조대, 구조출동 하세요!"
출동지령을 들은 우리 구조대는 긴급히 출동했다. 어디로 도망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혹시 집 안에 들어가거나 도로로 도망가다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까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빠른 현장도착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출동 중 신고자와 통화를 하였다. 지금 상황이 어떠냐고 물었다. 신고자는 고라니가 출현한 장소 근처에 사시는 주민이었다. 지금 고라니는 식당과 주택 사이 공터 구석에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린 출동 중인 차 안에서 고라니를 어떻게 할지 회의를 했다. 고라니가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포획할지, 아니면 쫓아서 산으로 보낼지 결정을 해야 했다. 가장 먼저 결정한 것은 고라니 또한 소중한 생명이기에 안전하게 구조하자는 것이었다. 현장 부근에 도착해보니 우리 구조대의 공작차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주택가 골목이 좁았다. 대로변에 차를 정차한 후 각종 동물포획 도구를 챙겨서 신고자를 만나 고라니가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고라니는 산짐승이기에 먹이를 찾아 내려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고라니는 새끼보다는 좀 더 큰 정도였고, 공터에서 계속 서성이고 있었다. 아마 주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어 겁을 먹은 것 같았다. 고라니는 후각이 발달한 동물이기에 먹이로 유인할까 하다 결국 근처가 산이었기에 고라니를 산 쪽 방향으로 몰아서 돌려보내기로 했다.
공터가 앞뒤로 트여 있는 상태라서 나와 다른 대원 한 명은 공터 뒤쪽에서 접근했고, 나머지 대원들은 공터 앞에서 접근했다. 고라니가 잔뜩 겁을 먹었기에 도망갈 수 있어서 아주 신중하게 접근했다. 나는 산 방향으로 갈 수 있게 자리를 옆으로 비켜 주었고, 그때 앞에서 접근 중인 대원들이 몰기 시작했다. 소방대원들이 옆으로 퍼져 서서히 고라니 쪽으로 접근하며 산 방향으로 몰며 접근하자 고라니는 조금씩 움직였다. 우린 각자 주변으로 퍼져 내려오지 못하게 막은 후 계속 산 쪽으로 몰았다. 잘못하다가는 고라니가 다시 주택가 쪽으로 내려올 수 있어서 엉뚱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조심조심 접근했다. 그렇게 한참을 몰다 보니 우리 대원들과 고라니는 어느새 주택가에서 멀어져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곳까지 가게 됐다. 고라니가 한 번씩 뒤를 돌아 우리를 보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방향을 틀어 내려오진 않았다. 속으로 '아! 천만다행이다. 이놈이 별난 놈이었으면 올라갔다 내려왔다 이리저리 뛰어다녔으면 포획하기도 힘들고 산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대원 모두가 고라니 꽁무니를 쫓아다니느라 한바탕 골탕을 먹었을 것이다. '이 녀석은 그래도 착한 놈이군'이라는 생각을 하며 녀석를 따라갔다. 계속 몰다 보니 고라니는 점점 우리 시야에서 멀어져 산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렇게 고라니 출현사건은 끝이 났다. 신고자와 주변 사람들에게 고라니가 산에서 길을 잃거나 배가 고파 다시 내려오는 경우가 또 생길 수도 있으니 출현하면 다시 신고하라 하고 우린 소방서로 복귀했다.
요즘 고라니 같은 야생동물이 산 부근의 주택가나 농경지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아 사람들에게 피해를 많이 준다. 대구와 같은 대도시에서도 산에서 가까운 곳이라면 산돼지나 고라니 등이 도로나 주택가까지 접근하는 경우가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농민들이 땀 흘려 고생하며 지어놓은 농작물을 한순간에 다 망쳐놓거나 심지어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인간들은 이런 야생동물들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포획하거나 죽이려 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있다. 이렇게 야생동물들을 죽이기만 한다면 결국 생태계가 파괴되어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는 것이다. 두 입장이 다 맞기는 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야생동물이 산이 아닌 주택가에 자주 출현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야생동물의 주거지가 파괴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사는 영역으로 내려와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간과 동물은 공존해야 한다. 그러려면 야생동물의 주거지를 파괴하는 공사를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최소화해야 하며 산을 깎지 않으며 오염된 물을 깨끗이 정화하고 아무렇게나 자연에 흘려보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야생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피해가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하며 개인적으로 반성하게 된다.
손창용 대구중부소방서 119구조대 소방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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