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순간 만난 두 사람 음악 통해 새로운 인생 시작
뜨거운 여름, 블록버스터의 향연이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들뜬 한여름의 열기가 꺾이며 새로운 계절이 자리를 대신할 즈음에 우리는 서서히 작은 영화, 일상을 담은 소박한 영화에 시선이 가기 시작한다. 한국영화 대작의 틈바구니에서 단비처럼 잔잔하게 가슴을 적시는 영화가 관객의 지지를 받고 있다.
로맨스가 그리워지는 가을이다. 여기에 꾸밈없는 포크락의 선율을 스크린에 한가득 담은 영화, 청춘들의 삶을 반영하는 영화 '비긴 어게인'이 작지만 강한 울림을 선사한다.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져 많은 젊은이를 열광케 했던 '원스'(2006)의 감독 존 카니의 신작이다. 아일랜드인이며 베이시스트 출신인 존 카니는 음악적 영감을 가진 가난한 두 사람이 절박한 순간에 만나 하모니를 이루며 음악을 통해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색깔로 변주해낸다. 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 캐서린 키너 등의 이름 있는 배우들이 출연하고, 인기 절정의 록밴드 '마룬5'의 보컬 애덤 리바인까지 주요 배역으로 등장해 이목을 집중시킨다. '캐리비안의 해적'의 히로인 키이라 나이틀리가 싱어송라이터 그레타 역을 맡아 뛰어난 노래 실력을 보여주며 관객을 놀라게 한다.
영국인 싱어송라이터인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남자친구 데이브(애덤 리바인)가 메이저 음반회사와 계약을 하게 되면서 뉴욕으로 옮긴다. 순수하게 사랑하고 함께 노래하는 것이 좋은 그레타와 달리, 데이브는 성공을 맛보자 어느새 마음이 변해버린다. 스타 음반 프로듀서인 댄(마크 러팔로)은 해고되어 자포자기한 채 뮤직바에 들른다. 그는 이곳에서 그레타의 자작곡을 듣게 되고 그녀에게 음반제작을 제안한다. 인생에서 최고로 절망한 순간에 만난 두 명의 패자는 처음에는 머뭇거리다가 합심하여 거리 밴드를 결성한다. 스튜디오에서 음반을 제작할 예산이 없는 그들은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 뉴욕 거리의 소음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며 진짜 삶의 노래를 만들게 된 것이다.
사랑을 잃어버린 여자와, 가족과 일을 잃어버린 자포자기한 남자. 두 사람이 각자 억세게 운이 나쁜 그날, 영화는 각자의 시점에서 동일한 순간을 반복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점을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 남자는 이 억세게 운이 나쁜 날에 찬란한 보석을 발견하고 희망을 다시 걸어본다. 이제 커리어를 시작하는 여자와 커리어가 끝장난 남자가 만나서 만들어내는 패자 부활전은 두 사람을 버린 사람들을 향한 복수혈전이 아니다. 두 사람은 성공을 위해서, 혹은 복수를 위해서 칼날을 갈며 내일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삶을 위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만들고 연주한다.
남자가 재능을 질투하거나 젊음을 착취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여자가 자신을 학대하거나 남자에게 집착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영화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위트가 넘친다. 사랑은 거들뿐이다.
마지막까지 세속적 성공과는 상관없는 자신만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청춘이어서 희망이 느껴진다. 말하지 못하는 언뜻 풍기는 로맨스도 각자의 자리를 위해 양보하는 착한 영화다. 삶에 녹아든 음악이 지친 마음에 커다란 위로를 준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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