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아닌 일시적 적응장애…음악·커피 등 도움
"인간은 원래 일하기 싫어한다. 하기 싫은 일은 억지로 하지 마라." 수준 높은 직원 복지로 유명한 일본 미라이 공업의 CEO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인간의 본성 탓인지 평소에도 하기 싫었던 일이 긴 여름휴가를 다녀오고 나면 더 하기 싫어진다. 휴가 직후 출근하면 몸은 축 늘어지고, 집중력은 떨어지며, 컴퓨터 모니터 속 글자가 잘 읽히지도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만 그런 게 아니다'는 점이다. 실컷 쉬었으니 우리는 일해야 한다. 직장인들은 어떤 휴가 후유증을 겪고 있으며,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긴 휴가, 그만큼 긴 후유증
#1. 직장 생활 5년 차 회사원 A(30) 씨는 지난달 친구와 함께 스페인을 여행했다. 비싼 비행기표를 샀으니 2주 정도 여행하고 싶었지만 '회사님'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분이 아니었다. 5일간 여름휴가를 내고 앞뒤 주말을 붙여서 최대 8박 9일짜리 휴가를 만들었고,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를 여행했다. 장거리 여행 뒤에는 시차를 고려해 1, 2일 편하게 쉬었다가 출근을 하라고 하지만 이는 한국 직장인의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다. 하루라도 스페인에 오래 있으려고 한국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출근했다. 항공료를 아끼려 직항 대신 카타르 도하를 거치는 비행기를 탔더니 피로가 더 가중됐다. 시차 적응도 덜 됐는데 일하려니 졸음만 쏟아지고 죽을 맛이었다. A씨는 그렇게 일주일간 병든 닭처럼 지냈다.
#2. 홍인기(28) 씨는 6월 초 대만으로 일주일간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남들보다 이른 여름휴가를 떠날 때는 신났지만 다녀오니 눈앞이 캄캄했다. 홍 씨는 "지난해에도 여름휴가의 힘으로 1년을 견뎠는데, 괜히 일찍 다녀온 것 같다. 남은 1년이 길게 느껴지더라"며 허망해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휴가 복귀 이후 아침 출근길이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잤던 자유와 여유로운 아침 풍경은 사라졌고, 수많은 인파에 뒤섞여 출근하는 '지옥철'로 그의 발걸음이 향하고 있었다. 홍 씨는 "휴가 기간 내내 컴퓨터를 안 봐서 출근 첫날 오전 업무만 했는데도 눈이 아팠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출근 전날부터 일주일간 밀렸던 업무 관련 정보를 다 확인해야 하는 일"이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휴가 후유증, 월요병 같은 '적응장애'
휴가 후유증은 '월요병'과 비슷하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이를 의학 전문 용어로 '적응장애'(adjustment disorder) 라고 한다. 현실을 떠나 업무 스트레스가 없는 곳에서 지내다 오니 다시 업무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월요병이 매주 반복되는 익숙한 적응장애라면 휴가 후유증은 일 년에 한두 번 찾아오는 강도가 센 적응장애다.
휴가 후유증이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우울증은 온종일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고, 삶에 대한 흥미가 감소하는 등 2주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지만 적응장애는 일상에 적응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공포 영화를 볼 때는 무섭고 불안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 불안감이 사라진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는 공포 영화를 볼 때 느꼈던 불안감이 2주간 지속되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며 "일시적인 적응장애인 휴가 후유증을 우울증으로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휴가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예전에 한 방송에서 기자가 '월요병 극복 방법'을 소개하며 "일요일에 잠깐 출근해서 업무에 적응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보도했다가 수많은 직장인의 반발을 산 적이 있었다. '휴가를 가지 않는다' '일을 더 많이 한다' 등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원론적인 답변은 후유증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다른 정신과 전문의는 "휴가 뒤 회사 업무에 쉽게 적응하려면 첫 출근날 업무량을 조금 줄이고,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천천히 일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업무에 치이는 한국 직장에서 적용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수영이나 스트레칭 같은 운동을 하고, 일을 할 때 가장 자신 있고 쉬운 일부터 우선순위를 둬 처리하는 것이 좋다. 커피처럼 적당량의 카페인을 섭취하는 것도 업무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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