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손실회피 vs 야성적 충동

입력 2014-08-13 10:54:53

행동경제학의 발견 중 하나가 손실회피 성향이다. 사람은 손해를 싫어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이익을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 손실을 입었을 때의 상실감을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손해를 볼 수도 있는 도전보다는 작지만 확실한 이익이 보장되는 경우를 더 선호하는 쪽으로 행동하는 결과를 낳는다.

피터 번스타인의 저서 '리스크'에 소개된 실험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피실험자에게 그냥 100달러를 받을 것이냐, 아니면 67%의 확률로 200달러를 받는 도박을 할 것이냐를 선택하라고 했더니 대부분의 피실험자가 전자를 택했다. 절반 이상의 확률로 두 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괜찮은 도박인데 왜 이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33%의 확률로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는 사태가 싫기 때문이다. 여러 학자들이 유사한 실험을 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이런 성향은 개인의 선택에만 국한되지 않고 국가의 정책 결정에도 작용한다. 당장에는 고통스럽지만 장기적으로 득이 되는 정책을 멀리하는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유권자의 복지 지출 압력에 밀려 국가 부채를 계속 늘려가는 현대 복지국가의 행태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빚을 내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경고하지만 정책 결정권자 즉 정치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2012년 우리 대선 때에도 확인된 바다

이는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그들의 관심은 당선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당장에 국민의 호감을 사는 정책이지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정책이 아니다. 그런 정책은 인기가 없다. 문제는 정치인의 손실회피에 대한 유권자의 선호는 결국 유권자들에게 내일의 손실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기업은 엄청난 사내 유보금을 쌓아놓은 채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투자 리스크를 감수하기 싫다는 전형적 손실회피다. 이는 내일의 몰락을 불러온다. 기업의 흥망성쇠의 역사가 잘 보여주는 바다. 그러나 기업에는 손실회피와는 정반대의 과감한 투자 본능, 케인스가 말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도 있다. 우리의 경제개발 성공의 주 동력은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 경제가 되살아나려면 이것이 되살아나야 하는데 기업은 손실회피에 안주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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