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새로운 경제 성장 공식

입력 2014-08-13 07:50:49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말이 최근 들어 부쩍 통용되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취임 후 집무실이 아닌 현장에 아예 살다시피 하여 생겨난 말이다. 그 현장도 정장 차림의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는 높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아니라 저잣거리에서 서민과 눈높이를 같이하면서 부대끼고 있으니 그 말에 사람들은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정말로 현장에 답이 있을까? 현장에 표가 있다는 사실은 정치인에게 명백한 진실이다. 그러나 행정의 일선에서 시정을 진두지휘하는 대구시장이 서민의 애환을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경험해본다고 한들 그 현장에서 대구가 오랜 시간 갈구해 오던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나의 이러한 태도를 정당화하는 가장 간명한 근거는 '부분의 합이 반드시 전체가 아니다'라는 명제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나는 학술 논문과 그 안에 제시되어 있는 이론보다는 현장에 더 많은 시간을 바쳐 나의 관심을 의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TV를 보면서 빈둥거리는 시간도 잦다. TV에서 몸소 갈 수 없는 현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내가 둘러대는 이유다. 나의 아이들은 이런 아버지를 보면서 본업을 미심쩍어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난주였던가, 외국의 뉴스 전문 채널을 돌리다가 TV 보는 것이 단순히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을 접하였다.

그것은 국제노동기구(ILO)가 만든 이른바 공영광고였다. 불과 30초 정도의 짧은 프로그램이었는데 경제성장을 새로운 방식으로 정의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경제성장은 청년(youth)과 좋은 일자리(decent job)의 결합이라는 것이다. 이는 다음의 공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청년+좋은 일자리=경제 성장'. 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경제 성장은 생산량의 증가를 의미한다. 한 국가의 경제 규모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개념인 국민총생산(GNP) 또는 국내총생산(GDP)은 생산량을 측정한 통계다. 한국이 그동안 경제 성장에 죽으라고 매달린 것은 실은 국가 전체의 생산 총량을 증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출을 장려하고, 기업을 지원하고, 효과적인 경제 정책을 구사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었던 것도 모두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생산 총량을 늘리는 데 집중해 온 경제 운영 방식에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생산량이 증가하고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은 줄지 않고 부의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잘살기 위해 경제 성장을 추구하였는데, 경제가 성장하여도 여전히 잘살지 못하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혹은 누구를 위하여 경제 성장을 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위의 새로운 경제 성장 공식은 이러한 비판에 근거한 것이다. 때로는 TV 광고가 저명한 학자가 쓴 책보다 더욱 깊은 통찰력을 담아내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청년 인구가 증가하고 동시에 좋은 일자리가 생겨나서, 결과적으로 더 많은 청년에게 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경제 성장의 이유이고 또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 그 어떤 부연 설명이 더 필요한가?

새로운 경제 성장 공식은 국가 경제의 운영에도 반드시 적용되어야 하겠지만, 대구 경제의 새판 짜기에 오히려 더욱 적실한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대구는 청년 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출되고 있으며, 임금 수준은 전국적으로 볼 때 최하위 수준으로 좋은 일자리 부족 현상은 이미 구조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 경제 정책을 논의하면서 더 이상 복잡한 방식으로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더 많은 청년에게 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새로운 경제 성장의 공식에 대입하여 보면 원하는 답이 쉽게 구해질 것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의 다른 논거가 여기에 있다. 가끔은 얄궂은 공식도 문제 해결의 필수적 길잡이가 된다. 현장이 아닌 곳, 혹은 경계의 너머에도 답이 있다는 말이다.

김영철/계명대 교수·경제금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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