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짧은 북한 여행을 하고 돌아온 미국 대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난 지 1년도 안 지났을 때였다. 놀랍게도 학생들 대부분은 평양, 남포, 원산 등을 순회하는 동안 북한을 변호하는 사람들로 변해 있었다. 반미 감정?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학생들은 북한에 대한 미국 언론의 왜곡보도를 열을 내며 비판했다. 여행을 주선하는 한 업체의 젊은 미국인 사장이 며칠 후 학생들을 데리고 한 영어권 나라의 대사관으로 갔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학생들이 건방지게도 경험 많은 외교관들 앞에서 전문가 행세를 하며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완화를 강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미국이 소위 '전복적 대북 포용정책'(subversive engagement)을 취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 황당한 여행단을 떠올린다. '전복적 포용'이란 대충 이런 것이다. 미국이 만일 의사, 농업 과학자, 경제 충고자 등을 북한으로 보내면, 선군 체제가 당분간 이득을 좀 보기는 하겠지만 친절한 미국인들의 교육과 도움을 받는 북한 엘리트들이 언젠가는 북한 선전의 허위성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하면 점차적으로나마 김정은 정권에 대한 지지도를 크게 허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실소케 하는 것은 전복적 포용 정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신문 사설이나 TV 인터뷰에서 그런 제안을 대놓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전복적'이라는 말의 뜻을 모르는 줄 아는가? 북한이 그런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교류를 방치하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건가?
사실은 외국인들을 자주 접하는 북한 주민들이 체제를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지지하고 미국을 규탄한다. 자신들의 충성에 대한 정권의 의심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외국인에게 교육을 받아본 북한 주민은 정권을 허물 생각이 없다. 체제가 유지되어야 그들이 그나마 받은 교육으로 출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면 북한의 엘리트층도 망하게 된다.
'전복적 포용'으로 외국인이 전복을 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외국인의 선입견에 의하면 북한은 우울하고 어두운 나라이며 북한 사람들은 늘 반미 구호를 외치면서 산다. 그러니 한반도의 예쁜 대도시인 평양에 도착해서 외국인을 다룰 줄 아는 세련된 북한 간부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의 북한관은 180도로 바뀌게 마련이다. 미국이 북한을 괜히 위험한 나라로 몰아치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돌아온다.
북한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외국인들은 그 나라를 일부러 미화할 이유가 따로 있다. 북한이 잔인한 독재 체제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자신 활동의 부도덕성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북한에 대해 아주 비판적인 글이 미국 신문에 나오면 북한에서 사업이나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우월한 전문지식을 내세우며 반박하는 댓글을 단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핵실험을 실시하면 이 사람들이 책임을 미국의 강경정책으로 돌리려는 사설을 게재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북한에 자주 들락거릴 수 있는 권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다. 평양 투어를 제공하는 업체의 사장이 베이징에 있는 북한 대사관에서 비자를 갱신하지 못하게 되면 그의 사업은 망한다. 북한의 건축물을 연구하는 교수가 북한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면, 연구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발표를 하거나 글을 쓸 때면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을 자제한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바로 이런 사람들이 미국에서 북한 전문가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미국 외무부가 마련한 북한과 관련된 학술대회 참석차 워싱턴에 갔다. 발표자의 절반 이상이 북한에서 사업이나 자원 봉사나 다른 종류의 '전복적 포용'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일반적으로는 미국인의 북한관은 아주 부정적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도 미국의 북한 학계에서는 어느 정도의 친북화가 진행 중이란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한미 동맹을 흔드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작기는 하지만 한국 정권이 이 추세를 방치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세계 여론을 위한 남북 간의 홍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브라이언 마이어스/동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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