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사업 예산 90% 외지업체 독식…'안방 홀대' 더는 안 된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과 대구경북의 경쟁력 격차는 이대로 두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역 업체나 인재들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형편에서 수도권 업체의 독식 구조가 더 고착화되도록 내팽개쳐 둬서는 안 된다. 각계의 지역 전문가들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인큐베이터 이론'을 꺼낸다.
이 대안의 핵심은 지역 업체들이 어느 정도 경쟁력이 생기기 전까지 특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배려와 기회는 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각종 사업에서 지역 전체 예산의 90% 이상을 외지 업체가 독식한다는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역에서 수년간 전시업체를 경영했던 경험을 가진 김진영 ㈜제이와이씨 대표이사는 "지역의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업체를 인큐베이터하는 수준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진입 장벽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며 "대구경북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이익을 위해 발벗고 나서야 지역 업체들도 숨 쉴 공간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가 지역 업체 전문성 향상에 나서야
지역 전시업체 홀대에 대한 대구경북 지자체 관계자들의 이유는 대체로 비슷하다. 지역 업체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 경북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전시업은 다른 사업보다 창의력이나 기술력이 중요하다. 지역 살리기도 좋지만 지역 업체는 아직 수도권 업체보다 능력이 부족하다. 지역 업체가 참여하면 비싼 돈을 들여 지은 전시관이 빛을 발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 업체들은 "능력이 부족하다고 내팽개칠 게 아니라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지자체가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부산시와 제주도 등 다른 시'도에서는 수십억원 상당의 공공 전시업을 '지역제한'이나 '지역의무 공동도급' '지역 업체 참여 가산점 부여' 등을 통해 '지역 업체에 기회 주기'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역 업체가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자양분을 마련하는 것 역시 지자체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이돈일 영남대 산업디자인과 교수는 "지역 업체가 수도권 업체보다 더 나은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전시사업은 설립되는 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데 지역이해도나 유지보수의 신속성은 지역 업체가 훨씬 뛰어나다"고 했다. 이어 "지자체가 공동도급에서 지역 업체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분명히 마련해준다면 지역 업체와 지자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산학협력을 통해 지역 업체의 역량을 키우자는 주장도 있다. 백순현 계명대 산업디자인과 교수는 "지역 업체의 질적인 향상이라는 현실적인 돌파구를 열어줘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 업체의 낮은 전문성이 문제라면 지역 업체가 지역대학과 협력 하에 입찰에 참여하도록 방침을 정하면 지역 업체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지역 업체 챙기기 이어져야
대구경북에 '지역 업체 살리기'의 좋은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조금씩 지역 업체 참여를 유도하는 입찰공고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경산시는 '삼성현역사문화관'(69억원), 봉화군은 '인물역사관'(8억7천원), 경북개발공사는 '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 및 한국문화테마파크'(202억6천만원) 사업에 지역 업체와 공동도급 시 가산점을 부여했다. 그 결과 포항'안동'경산의 지역 업체가 수도권 업체와의 공동도급을 통해 모두 낙찰에 성공했다. 포항에 위치한 전시업체 에스엠티의 한종우 소장은 "가산점이 없었다면 '삼성현역사문화관' 공모에 참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 사업을 발판으로 앞으로 전시업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대구시는 올해 '달성습지 생태학습관 전시물 설계 및 제작'설치사업'(20억원)에 대해 지역 업체와 공동도급할 경우 수급 비율에 따라 가산점을 부여하겠다고 공고했다. 진입 장벽도 다른 전시사업에 비해 대폭 낮춰 지역 업체의 활발한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지역 업체는 이러한 지역에 대한 배려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희망하고 있다. 대구의 한 전시업체 관계자는 "달성습지 생태학습관 관련 준비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많이 생겨 지역 전시업계에 활력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역의 공연콘텐츠 키워야
대구시는 공연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이는 비싼 로열티를 주고 들여온 외국의 작품이나 수도권 제작사나 기획사들의 공연이 연중 공연되는 도시를 지향하고자 함은 아니다. 해외 또는 서울 작품뿐 아니라 대구경북지역의 다양한 스토리를 품은 작품들이 지역민들에게 사랑받고, 더 나아가 국내'외에서 활발히 교류해야 한다. 대구가 공연 소비도시가 아니라 생산도시로서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자체 및 지역민의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
최현묵 딤프 집행위원(전 수성아트피아 관장)은 "올해 딤프에서 공연된 작품들은 대체로 수준 높은 작품들로, 좋았지만 지역의 콘텐츠 생산에도 각별한 관심을 지원을 쏟아야 한다"며 "현재로서는 지역 작품을 위해 인위적인 예산배정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향후에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생각으로 지역을 위한 딤프의 판을 더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역 극단 대표 및 연출가들도 딤프에서 지역의 콘텐츠 개발에 조금만 더 지원해준다면 수준 높은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최주환 초이스시어터 대표는 "지난해 '오! 미스리'가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돼 딤프 무대에 오른 경험이 있다. 또다시 기회가 온다면 많은 지역 콘텐츠 중에 잘 선별해 한층 향상된 뮤지컬 제작 역량이 보여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구와 중국을 오가며 한'중 합작공연 등 문화교류에 앞장서고 있는 극단 뉴컴퍼니 이상원 대표도 "아직은 독자적인 역량으로 세계적 수준의 뮤지컬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지역 작품을 키우려는 정책적 배려와 지원이 필요하다"며 "대구시와 딤프 이사진'집행부는 10년 이후의 딤프 축제를 내다보고, 지역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지역 이익은 지역민이 스스로 지켜야
지역민이 지역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비하하는 일이 고질병처럼 퍼져 패배주의에 이를 정도다. 객관적인 경쟁력으로 보자면 지역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지역 이익은 지역 스스로 지켜야 한다. 지역의 돈과 인력, 기술이 빨대처럼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서는 지역의 미래가 없다.
노무현 정권 이전부터 수도권과 지역 간 균형발전을 주창해 온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역 간 개발과 산업 유치까지 적자생존과 승자독식 구조가 고착화되어서는 안 된다"며 "지역민들이 생활현장에서 사회구조의 한계를 자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협력하고 연대할 때 균형발전은 실현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역의 돈이 지역에 풀리는 구조를 지자체가 앞장서서 만들어야 한다. 대구경북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대구시와 8개 구'군, 경북도의 23개 시'군 지자체 역시 지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 행정을 펴야 지역민들이 그만큼 먹고살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다는 인식을 꼭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인큐베이터 이론=미숙한 신생아를 키우듯 갓 창업한 소기업이나 기관 등의 성장을 돕는 것. 독자적 기술, 노하우 등을 갖춘 연구개발형 중소기업을 지방자치단체 등이 중심이 되어 연구시설과 기기, 자금 등을 지원함으로써 새로운 산업창출의 장과 기회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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