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칼럼] 소선거구제가 화근이다

입력 2014-08-04 11:08:06

이정현 당선인에게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 정치의 새 역사를 썼다"거나 "지역주의 철옹성을 뚫은 한국 정치사의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할 정도다. 이정현의 승리는 이런 찬사를 받고도 남을 만한 쾌거다. 198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소선거구제를 택한 이후 어느 누구도,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혼자서 가게 됐으니 말이다.

보수정당의 후보가 호남에서 당선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호남 중의 호남이라는 광주'전남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영남 중의 영남이라는 대구'경북에서 민주당 간판을 내걸고 지역구에서 배지를 단 국회의원이 한 사람도 없는 것과 항상 비교돼 왔던 터였다.

그 일을 이정현 후보가 이번에 해냈다. 낙선의 고배를 마신 뒤 고향을 향해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떠나거나 옷자락 끝단도 보여주지 않고 지역구를 버리고 서울서 잘 먹고 잘사는 거물 정치인들을 수없이 봐왔던 필자의 눈에는 이정현은 미련해 보였다. 그런데 그가 거짓말 같은 일을 해버린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가?

호남의 이정현을 이야기하다 보면 대구의 김부겸을 떠올린다. '수도권 4선 의원'이라는 차려진 밥상을 물리치고 고생길을 스스로 선택한 김부겸의 결단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서울 종로를 뿌리치고 부산으로 내려갔던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이 외에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김부겸의 가능성과 파괴력에 주목하는 것 아닌가?

성급하게도 일부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은 "이정현의 승리에서, 김부겸의 가능성에서 지역주의 극복의 단초를 발견했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냉정하게 결론을 말하자면 'NO'이다. 물론 이정현이나 김부겸 같은 이는 앞으로도 가뭄에 콩 나듯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지역주의와 소선거구제는 공생 관계이기 때문이다.

승자 독식, 패자 쪽박의 현행 소선거구제가 유지되는 한 지역주의 극복은 꿈같은 이야기라는 말이다. 양대 정당이 특정 지역을 나눠 먹기에 지금보다 더 좋은 선거제도는 없다. 1988년 총선부터 중선거구제이던 것을 소선거구제로 바꾼 진짜 이유도 그렇다. 강력한 지역 기반을 가진 맹주들의 나눠 먹기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게 20년도 넘게 '특정 지역 특정 정당'이라는 독식 구조를 만들어 내고 그 두 정당이 허구한 날 싸우는 통에 대한민국 정치가 요절이 나고 있는 것이다.

소선거구제는 독과점체제다. 정치적 담합이다. '정치공정거래위'라도 있다면 보나 마나 엄벌 대상이다. 제3세력이나 중소 정당은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거대 정당 둘이서 나눠 먹기도 바쁜데 이 좋은 걸 나눠줄 게 뭐 있겠나.

이들은 영남과 호남을 접고 들어간다. 공천만 주면 당선되니 공도 들이지 않는다. 한쪽은 쉽게 독식하고 다른 쪽은 죽어도 당선자를 낼 수 없다. 새누리 호남 포기, 새정치민주연합 영남 포기라는 불문율은 그래서 나왔다. 남는 것은 충청과 수도권이다. 매번 이 지역을 승부처라고 부르며 피 터지게 싸우는 이유다.

소선거구제 아래서는 후보도 지도부도 정당도 상대를 죽여야 한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판이다. 지역도 나라도 민생도 뒷전이다. 7'30 재보선에서 여야 거대 정당이 보여준 모습이 딱 그 꼴이다. 국민화합의 모범이 되어야 할 국회가, 민의의 대변자인 정당이 갈등과 분열의 진원지가 되는 구조 때문이다.

거대 정당들은 다음 선거를 걱정할 이유는 없다. 그때도 이들 외에 다른 정치세력이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제헌절 기념사에서 "승자 독식의 현행 선거제도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하는지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한 진단은 정확한 것이다.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논의를 벌이자는 제안이다. 정 의장은 "정치의 틀을 근원적으로 바꿔야 한다. 지역주의와 진영논리를 벗어던지고 국민화합을 이룰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국회 수장이 이런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반갑기만 하다.

다시 말하지만 승자 독식, 패자 쪽박이라는 소선거구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 정치권이 보여주는 저질 '개싸움' 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소선거구제 그게 화근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