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영계와 마누라

입력 2014-08-04 07:49:57

날이 더워지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음식 중 하나가 영계백숙이다. 여기서 영계라는 말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young+계(鷄)'가 아니냐고 반문을 한다. 그렇지만 우리말을 잘 아는 사람들은 영계가 어리고 살이 부드러운 닭을 뜻하는 '연계'(軟鷄)에서 온 것이며, 반의어는 너무 늙어서 고기가 질기고 맛이 없는 폐계(廢鷄)라고 이야기를 한다. 영계가 '연계'에서 온 말이라는 것이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연계를 왜 영계라고 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예 틀렸다고도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현재 '영계'라는 말은 병아리보다 좀 더 큰 닭을 의미하는 것보다 비교적 나이가 어린 이성(異性)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데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나이 어린 이성을 '영계'라고 부른 것은 우리나라에서 생겼다기보다는 영어와의 교류로 인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영어에서 어린 닭을 뜻하는 'chicken'은 속어로 성적 매력이 있는 어린 여자를 가리키는데, 현재 속된 말로 이르는 영계와 거의 의미가 일치한다. 그래서 추리를 해 볼 수 있는 것이 영어를 접한 사람들이 어린 닭을 뜻하는 '연계'를 'young鷄'로 표현해도 크게 의미 차이가 나지 않으니까 그냥 더 발음하기 쉽게 영계라고 쓴 것이 널리 퍼진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속되게 쓰는 말은 이처럼 어원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슷한 말을 가져다 붙여서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이를 '민간 어원'이라고 한다. 우리말의 '마누라'는 가장 많은 민간 어원을 가지고 있는 말 중 하나다. 대부분 민간에서 웃자고 하는 이야기들인데, 음이 비슷한 단어는 다 끌어들인다. 마늘이 정력에 좋다는 것에 착안하여, '마늘아'라고 암호처럼 은근하게 부르던 것이 마누라가 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남편하고 겸상을 못하고) 마루에서 밥 먹는다고 해서 '마루'가 '마누'가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줄임말들도 이용하는데, '마주 누워'에서 온 것이라고도 하고, 경상도 사나이가 아내보고 "마, 누우라."라고 한 데서 왔다고 하는 것은 조금은 어이가 없지만 말을 만들어 낸 사람이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누라의 가장 그럴듯한 어원은 중세 궁중에서 쓰던 '마노라'에서 왔다는 것이다. 마노라는 왕이나 왕비, 세자처럼 아주 높은 사람 뒤에 붙이던 존칭어였다. 이 말이 당상관 이상의 벼슬아치에게 붙이던 '영감'이 '나이 많은 남자'를 지칭하는 변화가 일어난 것과 같이 '나이 많은 아내'를 뜻하는 것으로 의미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마누라가 매우 높은 존재라는 것인데, 흥미로운 것은 앞에 이야기했던 마누라의 어원이 남자들의 소망을 반영한 것이라면 이 설명은 마누라를 대하는 남자들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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