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구제역 농장 "백신 벌써 맞혔는데…자식 같은 돼지 어떡해"

입력 2014-07-29 10:28:33

백신접종 2주 전 마쳐, 항체형성과정 감염…해외 여행도 안 갔는데

구제역이 발생한 고령 돼지농장에서 방역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차량 통제를 하고 있다. 고령군 제공
구제역이 발생한 고령 돼지농장에서 방역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차량 통제를 하고 있다. 고령군 제공

"불과 2주 전에 고령지역 돼지 6만여 마리에 대해 백신 접종을 마쳤는데, 청정 고령에 구제역이라니…."

28일 오후 2시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난 고령군 운수면 한 돼지농장 주변. 방역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차량 통제를 하고 있다. 32℃를 넘는 무더위에 10분도 채 안 돼 방역복을 입은 직원들은 비 오듯 땀을 흘렸지만, 청정 고령지역에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충격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곽용환 고령군수는 휴가도 반납한 채 현장에 나와 방역과 차량 통제 등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의성에 이어 고령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자, 고령지역 양돈 농가와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이 쌓여 가고 있다. 특히 고령지역 돼지 농가에 대해 백신 접종을 하는 과정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자, 돼지 농가들은 구제역이 확산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돼지 구제역이 확인된 농장은 고령읍과 차로 10분가량 떨어져 있다. 해당 돼지농장 주변 500m 이내에는 농가 3곳에서 소 228마리, 1가구에서 돼지 1천550마리를 키우고 있다. 또 3㎞ 이내에는 152개 농가가 소 2천321마리, 6개 농가가 돼지 9천750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고령군은 총 51개 농가에서 돼지 12만여 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구제역이 발생한 돼지 농가 주인 이모(55) 씨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이다. 자식처럼 키운 돼지들을 살처분해야 한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해했다. 이 씨는 지난 1992년부터 돼지를 키워왔다. 행여 돼지들이 구제역에 걸릴까 봐 해외여행도 못 갔다. 이 농장에서는 모돈 200마리와 자돈 700마리, 비육돈 1천100마리 등 2천10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비육돈는 출하를 눈앞에 두고 있다.

돼지고기 소비가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성수기를 맞았지만, 이 씨는 단 한 마리도 출하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 씨는 구제역이 의심되는 돼지가 발견되던 27일에도 돈사 소독을 오전'오후 두 차례에 걸쳐 했으며, 백신 접종도 2주 전에 마친 상태였다. 통상 백신 접종 후 항체가 생기려면 2주가량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이 씨는 백신 접종 과정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것이라 더욱 충격을 받고 있다.

이 농장에서는 27일부터 돼지 40여 마리가 발굽이 벗겨지고 출혈이 생기는 등 구제역 증상을 보였다. 9개 돈사 가운데 3개 돈사의 돼지에서 증상이 나타났다.

구제역 증상이 나타난 3개 돈사 40마리는 28일 오후 7시 농장 인근에 모두 매몰됐다. 이 씨는 "다음 주면 비육돈 일부를 출하할 계획이었다"면서 "밤잠을 설쳐가며 키운 자식들을 매몰시켜야 한다니 억장이 무너진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마을 주민들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태수 씨는 "공기 좋고 물 맑은 우리 마을에 말로만 듣던 구제역이 발생했다니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 양돈'축산 농가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고 혀를 찼다.

인근 양돈'축산 농업인들은 행여나 구제역 불똥이 튀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서는 표정이다. 돼지 2만여 마리를 사육하고 있는 이대호 씨는 "구제역이 바로 코밑에서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밤에 한숨도 못 잤다"면서 "방역 당국이 소독을 철저히 하고 빠른 시간 내에 원인을 규명해서 더 확산되는 일이 없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한 마음을 표했다.

고령군은 돼지 구제역이 발생하자 백신 7만5천여 마리분을 확보해 돼지 농가에 나눠줬다. 돼지 농가들은 28일 오전까지 백신 접종을 모두 마쳤다. 이 밖에 소 1만8천 마리와 염소 1천100마리, 사슴 18마리에 대해서도 백신 접종을 한 뒤 임상관찰을 하고 있다. 한우 농가에 대해서는 고령군청 공무원들이 직접 농가를 방문해 백신 접종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대도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고령지역 돼지고기와 소고기 판로 확보에 힘써온 고령군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허임량 고령군 산림축산과장은 "고령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전국적으로 맛 좋기로 유명한데, 구제역이 발생해 자칫 판로가 막힐까 우려스럽다"면서 "고령에서 구제역이 발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확산되지 않도록 더욱 철저한 방역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