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투수·구단 직원 전전 눈물 젖은 빵 많이 씹었죠
야구는 세상살이와 닮은 점이 많다. 매 순간은 선택의 연속이고, 눈치가 빨라야 살아남는다. 모두에게 기회는 있지만 누구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아니란 점도 비슷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야구에 열광하는 더 큰 이유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사 같은 예측불가성에 있다. 우리 나이로 서른 살인 삼성 라이온즈 3군 선수, 김동호도 인생 역전 드라마를 꿈꾸며 마지막 도전에 나서고 있다.
◆야구는 내 인생
오른손 투수인 김동호는 골수 삼성 팬에게도 낯선 이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5월에야 삼성 유니폼을 처음 입었다. 게다가 1군은커녕 2군 경기인 퓨처스리그에서도 5월 14일 상무전에서 던진 게 유일하다.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1이닝 동안 몸에 맞는 공 1개, 볼넷 2개, 홈런 2개로 5실점 했다.
하지만 키 185㎝, 체중 93㎏의 우람한 덩치답게 그는 씩씩했다. "팀을 옮기고 얼마 안 됐던 탓에 심리적으로 조금 위축됐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자신감이 붙었어요. 제가 원래 홈런을 잘 안 맞는 스타일이거든요. 하하하!"
그의 야구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2004년 포수로 대구고, 2008년 투수로 영남대를 졸업했지만 불러주는 프로 구단이 없었다. 그러나 포기는 없었다. "2008년 롯데 자이언츠에 불펜 포수로 들어가 눈물 젖은 빵을 씹었죠. 선수가 아니라 구단 직원 신분이었으니까요. 1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으며 투수들의 공을 받는 틈틈이 혼자서 피칭 연습을 계속 했습니다."
그는 2009년 다시 선수로 돌아왔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속 150㎞에 육박하는 직구 덕분에 한화 이글스가 신고선수(연습생)로 받아줬지만 이듬해 방출됐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현역병 입대뿐이었다.
◆아이티에서 던진 희망
김동호는 카리브 해에 있는 아이티 파병을 자원했다. 물론 열대의 섬나라에서도 야구와의 끈은 놓지 않았다. 포수는 없었지만 손으로 그린 스트라이크존을 그물망에다 붙여 놓고는 온 힘을 기울여 공을 던졌다. 궂은 일에 항상 먼저 나선 덕분에 크게 미움을 받지는 않았다는 게 그의 기억이다.
지구 반대편 섬나라에서의 맹훈련은 그에게 '보약'이었다. 2012년 가을 제대 무렵, 우연히 인터넷을 보고 찾아간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기회를 잡게 된 밑천이 됐다. "야구 인생 중 가장 혹독하게 훈련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야구에 대해 생각을 해보라'는 김성근 감독님의 말씀을 되뇌다 보니 저의 문제점을 깨닫게 됐지요. 겨우 야구에 눈을 떴던 셈입니다."
김동호는 고양에서 7경기에 등판, 2홀드와 평균자책점 4.05를 기록하면서 프로 구단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야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은 것이다. "제가 관찰 대상이 됐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습니다. 제게 한 번도 부담을 주지않으셨던 부모님께 효도하게 됐다는 게 제일 기쁜 일이었지요."
◆팀이 필요로 하는 선수가 유일한 목표
연봉 2천700만원을 받는 김동호의 등번호는 '98'이다. 뭔가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았지만 대답은 썰렁했다. 삼성에 남아있던 두 자릿수 등번호가 그것뿐이었다는 설명이었다.
"물론 1군에 올라가면 바뀔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욕심 내지는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팀에서 필요한 선수가 되고 싶다는 게 저의 유일한 목표입니다."
프로야구 구단은 한 해 고졸'대졸 신인 등 약 700명을 두고 선택한다. 이 가운데 10% 정도만 입단한다. 1군에 올라올 확률은 더욱 낮다. 김동호가 1군에서 성공적인 야구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삼성의 투수진은 그만큼 두텁다.
"삼성에 와서 가장 달라진 점은 저 스스로 구단에 녹아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카도쿠라'조진호 코치, 이한일 트레이너로부터 기술적인 면뿐만 아니라 인성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대구고 동기인 박석민은 수시로 응원해주고 있고요."
오후 훈련을 위해 일어서는 그에게 좌우명이 있느냐고 물었다. 독실한 신앙인인 그는 성경 구절로 대답을 대신했다.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힘들고, 머나먼 길을 돌아온 그에게 무척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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