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의료 한 수 배웁시다" 각국 의사 연수지로 인기
1980, 90년대, 의사들은 앞다퉈 외국행 비행기를 탔다. 세계적인 의과대나 특별한 수술 기술을 보유한 클리닉에서 관심있는 분야의 선진 의료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연수를 받은 의사들은 진료실 한쪽 벽에 자랑스럽게 수료증을 걸었고, 자신의 의학 수준이 높다는 증거로 활용했다.
2014년, 상황은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지금 대구에는 세계적으로 톱 클래스 반열에 오른 의료 기술이 적지 않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의 의료진들이 한국, 특히 대구를 찾는다. 대구의 의료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세계의 의사들이 몰려든다
22일 오후 계명대 동산병원 결핵진단실. 호흡기내과 최원일 교수가 알바니아에서 온 부부의사 엔드리(Endri'28)'유아르다(Juarda'28) 씨와 환자들의 진단 데이터를 보며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호흡기 질환과 관련한 연수를 받기 위해 한국을 찾은 두 사람은 지난 5월부터 막대한 의학 관련 자료를 토대로 함께 토론하며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엔드리 씨는 폐렴과 폐색전증을 주제로 논문을 정리하고 있다. 내과 전문의인 유아르다 씨는 폐섬유화증에 대한 관심이 높다.
두 사람이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면 최 교수가 또 다른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진료 시스템이 전산화된 한국과 달리 각종 진단 자료를 종이문서로 보관하는 알바니아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작업이다.
논문에 대해 의견을 나누던 세 사람은 내과 집중치료실로 향했다. 최 교수는 컴퓨터 모니터로 폐석면증 환자의 CT(컴퓨터단층촬영) 영상을 띄우며 환자의 상태에 대해 설명했다. 진단 과정에서 주의할 점도 꼼꼼하게 귀띔했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 작성한 논문을 바탕으로 알바니아의 사례를 분석해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다.
엔드리 씨는 "많은 논문을 비교해 보니 한국, 특히 대구의 의료수준이 굉장히 높다는 걸 느꼈다"면서 "대구에서의 생활에 굉장히 만족한다. 오는 8월 알바니아로 돌아가면 동료들에게 한국 연수를 권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구가톨릭대병원에도 중국인 치과 전문의인 따이(50) 씨가 방문했다. 상하이에서 치과의원을 운영하는 따이 씨는 "치과 손동석 교수의 명성을 듣고 CGF(자가혈재생술'자신의 혈액에서 채취한 고농축 성장인자를 사용하는 방식) 임플란트 기법을 배우기 위해 찾아왔다"고 했다. 병원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수술에 대한 강의를 들은 그는 임플란트 수술 장면을 직접 참관했다. 따이 씨는 "의료 장비는 동일하게 갖췄지만 실제 수술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중국과 진료 시스템이 어떻게 다른 지에 대해 배우고 가겠다"고 말했다.
◆해마다 이어지는 연수 행렬
2011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경북대병원, 영남대의료원, 계명대 동산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등 대구 지역 상급종합병원 4곳과 대구파티마병원, W(더블유)병원 등 6곳에서 연수를 받은 외국인 의사는 136명이다.
계명대 동산병원이 46명으로 가장 많고, 경북대병원 32명, 대구파티마병원 40명, W(더블유)병원 7명, 영남대병원 6명, 대구가톨릭대병원 5명 등이었다. 주로 네팔, 인도,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베트남, 러시아 등 아시아 국가 출신들이 대부분이지만 일본, 미국, 독일, 호주 등 등 의료 선진국 의사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주로 수술을 참관하며 어깨 너머로 앞선 수술 노하우를 배우고 회진이나 환자 데이터를 활용해 논문을 공동 작업한다.
계명대 동산병원 산부인과 조치흠 교수는 "우리는 암환자를 치료할 경우 미리 8개 과에서 모여 의사 결정을 한다. 이런 진료 시스템을 갖춘 나라는 거의 없다"면서 "그들에게는 신선하면서 좋은 경험인 것"이라고 말했다.
각 병원마다 특화된 우수 분야에 의료인 연수가 집중되는 점도 특징이다. 경북대병원의 경우 연수를 온 32명 가운데 19명이 모발이식센터에서 의료 기술을 배웠고, 10명이 정형외과에서 골절 분야를 공부했다. 계명대 동산병원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20명이 복강경과 로봇 수술 연수를 위해 방문했고, 6명은 성형외과 분야에서 연수를 받았다. 영남대의료원은 6명 중 4명이 순환기센터에서 수술 기법을 배웠다. 대구가톨릭대병원도 얼굴 미용성형을 배우려는 의료인들이 성형외과로 몰렸다.
대구파티마병원은 연수 의료인 40명 가운데 25명이 병원 운영과 진료 시스템을 배우고 돌아갔다.
중소병원도 예외는 아니다. 손가락 접합 수술로 유명한 W(더블유)병원의 경우 미국, 독일, 러시아, 인도, 네팔 등 다양한 국가에서 의료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았다. 미국 루이빌대학 비카스 다완 교수가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나 W(더블유)병원을 찾기도 했다. 대장항문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구병원의 경우 지난 4월 치질 수술 시 사용되는 원형자동봉합기를 개발한 이탈리아 의사 안토니오 롱고 박사와 공동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W(더블유)병원 우상현 원장은 "외국인 의사들은 관심있는 분야의 논문을 보고 개인적으로 연수를 의뢰하거나 해외학회 발표나 강연을 듣고 연수를 요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외국 의료인 연수 활성화되려면
이처럼 외국인 연수가 끊이지 않는 것은 대구의 의료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경북대병원 정형외과 오창욱 교수는 "미국은 초청 연수가 까다롭고 규제가 심한 편이고, 일본은 영어로 의사 소통이 힘들어 한국을 찾는 경우가 많다"면서 "대구의 경우 의료 수준은 수도권에 못지 않은데 비해 외국인 연수에 호의적이어서 더 큰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수를 받기 위해 대구를 찾는 의사들은 대부분 모국에서는 중진급 의료진이다. 한국과 대구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돌아간 외국 의료진은 그 나라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들에게 대구를 소개하거나 대구 의료의 인지도를 알리게 된다. 이는 장차 의료관광객 증가 등 경제적 효과와 맞물릴 수 있다.
지역 의료계 전문가들은 대구시의 무관심을 아쉬워했다. W(더블유)병원 우상현 원장은 "메디시티를 표방하는 대구라면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 의사를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거나 관심을 갖고 있다는 신호라도 보내줘야한다. 하지만 지금 대구시는 무관심 그 자체다. 일부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비자 발급 과정부터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성형외과 박대환 교수는 "외국인 의사들이 연수를 받고 돌아가면 한국, 특히 대구에 대해 친근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파급효과도 크다. 현지 병원을 설립하고 초빙의사로 와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면서 "세계적 수준에 오른 분야를 중심으로 연수를 확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창욱 교수는 "외국인 연수는 병원의 위상을 높이고 장차 의료관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좋은 계기인데도 너무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것 같다"면서 "공식 웹사이트를 개설하거나 연수 시스템을 만드는 등 제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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