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공원이 있어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꽃과 나무와 연못이 있고, 바람과 구름과 햇빛이 있다. 나는 이 공원을 사랑하여 매일 아침 두어 시간씩 머문다. 몸 가는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이 꽃 저 나무 눈 맞춤하다보면 백만장자가 부럽지 않다.
야외 음악당이 있는 잔디밭이다. 팔을 흔들며 서너 바퀴 돌고 있는데 피아노 음악이 들려온다. 걷기에 딱 좋은 경쾌한 곡들이다. 누군지 모르지만 선곡에 신경 쓴 흔적이 고맙다.
리듬에 맞춰 걷다보니 잔디밭을 종종거리는 새들이 보인다. 집비둘기, 산비둘기에서부터 까치, 참새와 엄지 손가락만한 텃새들도 있다. 쟤네들도 음악을 이해하려나. 모차르트를 듣고 자란 딸기나 오이들이 더 좋은 맛을 낸다는 연구가 있고 보면 의심할 여지가 없을 듯도 하다.
휘적휘적 산책을 하던 청년이 주머니에서 새우깡을 꺼내 던진다. 새들이 청년을 에워싸고 모여든다. 오래 전 영화 '나의 사랑 마리안느'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숲 속에서 청년이 벤치에 앉아 편지를 읽고 있는데 머리와 어깨 위에 새들이 다투어 날아와 앉았다. 청년이 곧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개를 데리고 온 사람들도 보인다. 누구라도 금방 친구가 된다. 암놈인가요? 몇 살이에요?
털을 아주 시원하게 깎았군요. 아빠의 손을 잡고 온 어린 소녀가 하얀 포메라니안을 보고 손을 흔든다. 안~녕! 지나가던 여남은 살 된 남자 아이는 턱을 들고 코를 벌름거린다. 소녀가 그의 늠름한 진돗개를 본 순간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소년은 자신의 개를 무서워하는 소녀가 귀엽고 소녀를 울린 그의 개가 자랑스럽다.
나무 그늘에 앉은 할아버지는 아침부터 꾸벅꾸벅 졸고 있다. 아들 며느리 불편할까봐 선잠을 떨치고 나온 것일까. 그의 스피츠는 주둥이를 잔디밭에 박고 먹을 게 없나 킁킁거리고 있다.
사고가 났다. 한 무리의 조깅 청소년들이 구령을 외치며 할아버지 앞을 지나가는데 철없는 스피츠가 조깅 팀에 합류했다. 깜짝 놀란 할아버지가 소리를 지르며 뒤따라가니 청소년들이 얼른 방향을 틀어 스피츠를 데리고 되돌아왔다. 경보로 걷던 내가 그 모습을 보고 너무 크게 웃었나 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연신 나를 힐끔거리는데, 스피츠는 할아버지에게 깨갱깨갱 혼나고 있다.
소진/에세이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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