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 이 조각보다 덜 거칠까요?
대구미술관이 역량 있는 젊은 작가를 발굴'육성하기 위해 마련된 프로젝트 'Y artist project'에 대구 출신의 정재훈(34) 작가가 초대됐다.
경북대 미대에서 조소를 전공한 정 작가는 2010년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2011년 대구문화예술회관 '올해의 청년작가상' 수상, 2012 대구문화재단 '신진예술가 펠로우십' 작가에 선정되었으며 봉산문화회관 'WHITE OUT전', 대구문화예술회관 'FLAT LAND전', 갤러리 M 'Draw ing전' 등을 통해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보이며 차세대 작가로 떠올랐다.
대구미술관에서 9월 21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서 정 작가는 에스키스(Esquisse)라는 주제 아래 실험적인 드로잉부터 평면, 설치, 조각에 이르기까지 2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에스키스'는 작품 구상을 정리하기 위해 행하는 초고, 밑그림 등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정 작가는 "대구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작품들 또한 이후 작품을 위한 에스키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작가는 MDF 합판을 주재료로 사용해 대상의 형태를 분석'분해한 뒤 이를 다시 결합하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는 합판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부속품들을 조립해 기계 형태를 재현하거나 조립된 조형물을 다시 펼쳐놓은 듯한 평면작업 혹은 대형 합판 위에 볼트와 전기부속품들을 촘촘하게 배열해 추상적인 형태들이 화면 위로 떠오르는 작품들을 만들어 내며 조각과 회화,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드로잉과 평면작업, 조각, 설치작업 등을 포함한 이번 전시에서는 이전의 작업들과 다른 개념과 형태의 작품들이 소개됐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전시장 곳곳에 무리지어 설치한 사람과 동물 형상의 조각 작품들이다. 마치 문명화되지 않는 원시 상태를 전시공간에 연출한 듯한 느낌을 준다. 정 작가는 형상에 원초적인 느낌을 부여하기 위해 철사와 나무를 이용, 특정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인체 골격을 만든 뒤 그 위에 폴리우레탄 발포제를 덮어씌우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리고 어떤 형상에는 공작용 유토나 나무 부스러기 혹은 톱밥으로 표면처리를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태어난 군상들은 거칠고 폭력적이며 심지어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정 작가는 정제되지 않는 형상을 가진 군상들에게 '로-피그'(Raw-pig)라는 이름을 붙였다. 돼지(pig)는 흔히 인간을 경멸할 때 비유되는 동물이다. 정 작가는 돼지라는 이름을 빌려 순수함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을 간접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여기에 '날것'의 의미를 가진 'Raw'를 접두사 형식으로 덧붙이는 작명을 통해 원시 상태가 가진 미학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려는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정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구축해온 작품세계를 망라해 보여준다. 과거에 제작된 드로잉에서부터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된 인체 군상들까지 얼핏 보기에는 연속성과 일관성이 결여된 듯하지만 개별 작품들 속에 담겨 있는 작가의 사유를 찬찬히 쫓다 보면 정 작가의 작품세계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정 작가는 고이지 않는 샘처럼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 작가적 열정으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현대 조형미술의 본질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그의 작품은 평면과 조각 그리고 설치 작업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하나의 종합적인 미술형태를 만들어 내는지 잘 보여준다. 전시공간 전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의 조형적 원리가 어떤 의미들과 결합해 작품이라는 시각적 매체를 생성해 내는지를 탐색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김석모 대구미술관 전시팀장은 "젊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난해한 노철학자의 사유를 따라가는 일보다 어렵다. 정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 또한 어렵지만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사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053)790-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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