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휴대폰이 보편화 되면서 우리 경찰 조직에도 큰 영향을 미쳐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그중 하나가 경찰에 대한 신고 문화이다. 즉, 112 신고를 말한다.
휴대전화가 생기기 전에도 경찰의 112 신고전화 제도는 있었다. 휴대전화가 없던 당시 집 전화나 공중전화로 112에 신고했다.
국민이 범죄나 기타 사유로 경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자기 집인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집 밖인 경우이므로 공중전화로 신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공중전화는 긴급한 상황에서 즉시 이용하기가 어려워 경찰의 도움이 필요해도 도움을 받지 못해 더 큰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 시기에는 피해를 당해도 국가를 원망하거나 푸념하는 식으로 지나간 경우가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휴대폰이 보급된 이후로는 112 신고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12 신고를 담당하는 경찰 상황실 직원들은 농담조로 '모든 신고는 112를 통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집 대문이 고장 나 열리지 않는다'거나, '애완견이 아프니 치료해 달라'는 등 전혀 경찰 업무와 상관없는 신고도 많아 경찰의 업무를 가중시켜 힘들게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어쩌면 이런 신고는 차라리 양호한 편이다. 112 상황실 경찰관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장난 전화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여성이 112로 전화를 한 후 말은 하지 않고 약 10초간 비명을 지르다 끊어 버렸다.
신고자가 여성이고, 밤늦은 시간 비명만 지르다 전화가 끊기니 전화를 받은 직원은 무슨 큰일이 났나 싶어 팀장인 나에게 보고하였고, 녹취록을 들어 보니 특별한 신고내용은 없고 단지 여자의 비명뿐이었다. 순간 '무슨 큰일이 일어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빠른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 판단해 급히 신고자에게 다시 전화했지만 신호만 갈 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접수된 전화번호로 위치 추적을 하여 관할 파출소 순찰차를 출동시켰지만 위치추적 결과가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기지국 값으로 나와 신고자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동원 가능한 경찰력을 추가해 2시간 정도 더 수색하였으나 역시 신고자를 찾지 못했다. 계속되는 긴장감으로 인해 몸은 점점 더 피곤해져 갔다.
야간 근무자는 정상적인 상황이면 다음 날 아침에 교대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교대는 꿈도 못 꿀 것 같았다. 속으로 '오늘 교대는 없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교대 후 집에 갈 마음을 접었다.
위치추적으로는 신고자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수사과를 통해 휴대폰 인적 사항을 알아냈다. 신고자 집을 알아내어 가 보았으나 신고자는 집에 없었다.
신고자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면서 한층 더 걱정이 되었다. 어렵사리 타지에 사는 신고자 부모와 연락되어 조그만 단서라도 찾을까 기대했지만 이 역시 물거품이 되었다.
부모들은 자식인 신고자와 연락을 끊고 산 지 몇 년 되어 신고자와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부모는 친자식이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
아침 교대 시간이 될 무렵 관할 경찰서 상황실 직원으로부터 수배한 신고자의 차량을 통해 신고자를 찾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우선 사건이 해결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곧이어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맥이 탁 풀리고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 왔다. 신고 경위를 알아보니 남자 친구와 헤어진 신고자가 과음한 상태로 하소연하려고 112에 전화해 소리만 지르다 자기 차에 잠이 든 것이었다.
하필이면 하소연을 112에 하려고 했을까? 좋게 생각하면 요즘 경찰이 그만큼 국민에게 친근해졌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밤새 긴장한 나로서는 화가 났고 '어떻게 처벌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위 사례는 허위 신고도 아니고, 장난 신고라고 보기도 어렵다.
설사 장난 신고라도 경범죄에 해당하여 처벌이 미약하다. 그러나 위 사례와 비슷한 장난 신고 때문에 엄청난 경찰력이 낭비되고, 많은 경찰관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움이 필요한 일반 국민에게 돌아간다. 앞으로 장난 신고도 엄하게 처벌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 유행한 모 개그맨의 유행어를 외쳐보고 퇴근해야겠다. "장난 전화, 아니, 아니∼∼아니 되오!"
송청락 경북경찰청 112 종합상황실 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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