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를 주는 대로 받아먹던 전송기기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전원을 껐다가 켜도
도대체 종이를 받아먹지 않는다
사무기기 수리소에 전화를 해 놓고
덮개를 열어보니
관상용 사철나무 잎 한장이
롤러 사이에 끼어 있다
청소 아줌마가 나무를 옮기면서
잎 하나를 떨어뜨리고 갔나보다
아니다
석유 냄새 나는 문장만 보내지 말고
푸른 잎도 한장쯤 보내보라는
전송기기의 침묵시위일지도 모른다
-시집 『담장을 허물다』, 창비, 2013.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시위를 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든 갈등 없는 사회는 없다. 그 갈등이 순조롭게 해결되지 않을 때 약자는 강자를 향해 시위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머리에 띠를 두르고 시위하는 사람들을 뱀 보듯 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조합에서 시위를 하거나 파업을 하면 언제나 언론에서는 그 앞에 불법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그러니까 시위는 나쁘다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인이 늘 종이만 주니까 팩스도 화가 나서 나도 푸른 나뭇잎을 먹고 싶다고 주인을 향해 입을 닫고 침묵시위를 한다는 것이다.
팩스도 시위를 하는 사회에 살고 싶지 않은가?
권서각 시인 kweon5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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