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효도하는 정부? 천만에!

입력 2014-07-15 10:24:57

"2014년 7월 기초연금이 지급됩니다."

현수막을 얼핏 보고는 여당에서 내건 줄 알았다.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씩 주는 기초연금을 공약하고는 70%의 노인에게만 차등적으로 지급하게 된 공약 후퇴에 대해 사과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야당 이름이 버젓이 들어가 있다. 하긴 7월부터 400만 명이 넘는 노인들의 통장으로 많게는 20만 원까지 입금될 것인데, 그 시점에서 기억되고 싶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을 것이다. 하긴 2천만이 넘게 가입한 노후소득보장제도인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이 감액되도록 하여 국민연금에 대한 가입자의 신뢰와 유인을 훼손한 기초연금법안에 야당이 합의해주었으니 현수막을 내걸 자격은 충분할 수도 있다.

노인복지에 대한 정치인들의 '효자론'은 낯설지 않다. 대선,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를 가리지 않고 후보들은 다투어 '효자'를 자처한다. 최근 지방선거에서 '효도하는 지방정부'를 내세웠던 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자는 선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만이 아니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될 당시 건강보험공단 정형근 이사장은 이를 "효자보험"이라 불렀다. '사회적 효(孝)'라는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의 삶이 어렵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OECD 가입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9%로 제일 높다. 65세가 넘은 노인 둘 가운데 한 명은 가난하다는 거다. 급하게 증가한 노인 인구에 비례하여 노인 자살률 또한 가파르게 상승한다. 한 해에 노인 10만 명당 80명이 넘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대한민국에서 노년의 삶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노인 문제에 주목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고, 노인복지를 확대하는 것에 박수를 보내는 데 한 치의 주저함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노인복지제도를 '효도'라 부를 때마다 불편해진다. 효(孝)는 부모에 대해 자녀가 지켜야 할 도덕적 규범이다. 정부와 국민을 부모와 자식에 빗대는 것이 맞는가? 노인복지 앞에서 효자를 표방한다면, 아동복지 앞에서는 부모를 자처할 것인가? 그렇다면 장애인에 대한 사회복지를 확대하고자 할 때는 무엇이라 할 것인가? 사회복지를 확대하는 정부의 정당성을 왜 가족 간의 도덕규범으로 설득하려고 하는가?

사회복지는 정치인 개인의 선심이 아니다. 정부가 베푸는 시혜는 더더욱 아니다. 사회복지는 국가가 국민의 사회권을 보장하는 제도다. 정부는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의 합의에 따라 사회구성원을 위한 사회복지를 시행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와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정신이 개별 법률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회복지제도가 하나씩 만들어질 때마다 해당 사회적 위험을 공동으로 해결하겠다는 국민들의 합의는 '납세'로 뒷받침된다.

따라서 7월부터 지급되는 기초연금도 정부가 노인들을 위해 해주는 무언가가 아니다. 국민 모두의 세금으로 모든 국민에게 닥칠 노후의 위험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성격을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기초연금 지급으로 효도하고 있다고 내세울 일은 아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효자' 타령보다는 기초연금제도가 장기적으로 전 국민의 노후소득보장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성실하게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한 국민이 기초연금에서 손해를 보는 현재의 기초연금제도는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급격한 산업화에 이어 급격한 고령화까지 경험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국민들의 삶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도처에서 예측하지 못한 사회적 위험이 개인과 가족의 일상을 위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지출은 GDP의 10%를 넘지 못한다. OECD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GDP의 20%가 넘는 재정을 사회복지에 쓴다. 정부가 사회복지제도를 임시방편이나 임기응변으로 사고하는 한 사회복지정책을 통해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누리기는 요원해진다. 국민은 정부가 노인에게만 어설프게 효도하려는 자식이 되기보다 전 국민의 사회적 위험을 책임지는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의 비전을 만들어나갈 공인(公人)이 되길 원한다.

양난주/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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