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中 첫 입시때 좌절 선생님께서 격려…"50년 전 책 좋아하던 소년 이런 날 올줄 &
남유진(62) 구미시장은 정통 엘리트 고급관료 출신의 3선 단체장이다. 구미 옥성면 산촌리에서 태어나 10여 리 산길을 걸어 선산읍 초등학교에 다닌 시골 '촌놈'이다. 경북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총무처 사무관(5급)으로 공무원을 시작했다. 문교부, 내무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청송군수, 구미부시장, 국가청렴위원회 홍보협력국장 등 중앙부처와 경북도 요직을 두루 거친 후 관리관(1급)을 끝으로 2005년 36년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고향에 내려온 남 시장은 1년 만인 2006년 지방선거에서 구미시장 선거에 도전, 민선 4기 구미시장이 됐다. 이후 이번 6'4 지방선거까지 내리 3선 시장이 됐다.
이를 두고 주변에서는 "남 시장만큼 관운이 좋은 사람도 드물다"고 한다. 과연 운이 좋아서일까? 남 시장이 "정신적 지주이자 인생의 멘토"라고 항상 자랑하던 그의 선산초교 6학년 시절 담임 주기식(77) 선생님을 만나면서 그가 결코 운이 좋은 사람만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살갗을 찢을 듯 강렬하게 내리쬐던 태양이 구름 속에 모습을 감췄다. 목이 타 말라버린 초목이 생기를 찾고, 거북등처럼 갈라졌던 대지를 흠뻑 적실 만큼 단비가 내리던 3일 남 시장과 주기식 선생님이 만났다.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물었지만 만남은 4년 만이었다.
훤칠한 키에다 검은색 정장 차림의 단정한 옷매무새를 갖춘 주 선생님은 여든을 바라보는 노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제자를 만난 옛 스승은 "오늘 내리는 한 줄기 단비가 메말랐던 농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주듯이 시민 모두 행복해하는 좋은 행정을 펼쳐 삶에 지친 시민들을 기쁘게 해주는 시장이 돼달라"며 제자의 어깨를 감싸며 인사를 나눴다. 그는 "50년 전 어린 시절의 야무지고 당찬 자네를 보면서 일찍부터 이런 날이 올 것을 알았다"며 환한 미소로 시장의 3선 당선도 축하해 주었다.
남 시장의 어린 시절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주 씨는 "책을 참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시간만 나면 책을 읽길래 내가 도서실 담당을 맡겼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공부도 가장 잘하는 학생이었고, 책이 귀하던 시절이어서 좋아하는 책을 많이 읽으라는 배려였다"고 했다.
"주로 위인전만 골라서 읽길래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죠. 서슴없이 '위대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더군요. 이제 그 꿈을 이룬 것 같아 내게도 큰 기쁨이고 보람입니다."
어린 남유진은 꿈을 이루기 위해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목표로 삼았다. 위인전 속에 등장하는 아이젠하워, 조지 워싱턴, 나폴레옹 등 세계 훌륭한 지도자 대부분이 장군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려면 장군이 돼야 한다고 믿었던 남유진은 사관학교 진학을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의 꿈은 첫 단계에서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학교에서 항상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그는 대구에서 최고로 알아주는 경북중학교에 입학하고 싶었다. 선생님들의 기대도 상당했다. 특히 담임을 맡았던 주 선생님은 방과 후 별도로 그를 교무실로 불러 밤늦도록 과외 지도도 했다. 한치의 의심도 없이 하지 않았건만 경북중학교 진학 시험에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한 번도 실패한 일이 없었던 탓에 자신이 최고인 줄만 알았던 어린 남유진은 큰 충격에 빠졌다. 간신히 2차 시험으로 대구중에 입학했지만 자존심이 상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등교하려면 숙소에서 지름길인 경북중 앞을 지나가야 하는데 경북중은 보기도 싫어 가까운 길을 두고 먼 뒷길로 돌아 학교를 다니면서 경북고 진학의 꿈을 다졌다.
남 시장은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내가 있도록 담금질한 것 같다. 꾸준한 자기계발과 공부하는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경북고와 서울대 입학, 행정고시 공부도, 실패하지 않기 위해선 악바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며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을 이끌어 주신 주기식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학창시절을 회상했다.
한번은 어린 남유진이 친구들과 복도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데 주기식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진이만 불러서 머리에 꿀밤을 때리며 크게 꾸짖었다. '모범이 돼야 할 놈이 공부하지 않는 아이들과 어울려 정신없이 뛰어논다'는 이유였다.
"그때는 왜 나만 혼내나 싶어서 참 서럽고 섭섭했습니다. 그러나 한참 생각해보니 선생님의 진정 어린 사랑과 관심이 느껴지더군요. '노력이 최선'이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덕분에 참으로 긴 시간 동안 모질게 앉아서 공부만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오늘 내 작은 꿈을 이룰 수 있게 됐습니다." 남 시장은 옛 스승의 손을 다시 한 번 꼭 붙잡았다.
주기식 선생님은 이번 선거기간 동안 직접 도움을 주진 못했지만 남 시장 홈페이지를 방문해 네티즌들이 쓴 격려의 글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남 시장은 행정고시 합격, 서울대 대학원, 미국 조지워싱턴대, 금오공대 경영학 박사 학위 취득 등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풍부한 행정경험도 갖췄으니 50만 구미시를 이끌 지도자의 자질이 충분한 것이죠. 그가 박사 논문으로 제출한 '리더십'과 저서 '미국정치와 행정'이 연세대 등 명문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된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옛 스승은 "지난 8년간 일자리 창출, 투자유치 등 많은 경제적 성과를 이뤄냈지만 이에 만족하지 말고, 마지막 임기 동안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며 저소득층 서민들이 행복해 하는 도시, 건강한 삶과 자연의 멋이 어우러진 쾌적하고 안전한 구미를 만들어달라"며 "많은 시민들을 만나 그들의 작고 사소한 목소리를 귀하게 듣고 행정을 펼치는 시장이 되라"고 마지막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구미 정창구 기자 jungc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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