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기행 아시아를 가다] 고산족 순례-(1)몽족의 상례

입력 2014-07-10 14:03:12

사찰 입구 호랑이 탄 산신령 모습 우리네 성황당 내부와 매우 닮아

◆양배추밭 가운데 무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만이 산골 적막을 깨는 아침나절. 고기의 양이 워낙 많아 손질은 끝이 없고 장작불 위 가마솥에서는 고기들이 설설 끓으며 배고픈 산짐승들을 유혹한다. 40도 독한 위스키가 쉬지 않고 서로 손을 따라 돌아가며 캔(3개의 관으로 부는 악기)과 북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마을의 아낙들이 다 나오기라도 했을까. 전통 복장을 한 여인네들은 의자에 앉거나 쭈그려 앉아 이야기 소리가 끓이지 않는다. 두어 사람 나무 기둥을 세우는가 싶더니 대나무로 간단하게 식탁을 만든다. 오전 10시 반이 넘어가자 그 위에 음식을 간소하게 놓더니 남자들 10여 명이 땅바닥에 가지런히 앉고 가족들이 건너편에 서서 인사를 드린다. 아마도 이번 행사를 도와주어서 고맙다는 뜻인 모양이다.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은 간소했다. 조국이 있으나 평생 돌아가지 못하고 파릇파릇 양배추가 솟아나온 밭 가운데 묻혔다. 생전에 그 위를 수만 번 오가며 가꾸었을 텐데, 3개월에 한 번씩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수확하여 도시로 내다 팔았을 텐데, 그 일을 남겨두고 어떻게 갔을까. 양배추들은 많이 자라 금방 내다 팔 때가 될 것 같은데.

관 속에 든 시신을 옮기는데 일부는 멀리 피한다. 시신이 이레 동안 그 안에 머물렀으니 당연하다. 바람결에 실려온 냄새가 코를 마비시키며 혼절할 듯하다. 평생을 먹고 말해왔던 것들이 쌓여 저렇게 독한 냄새를 내는지. 삶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순례자의 가슴에도 만감이 교차한다. 그 끝자락을 힘겹게 붙잡고 바라보는 후손들도 마지막 눈길을 보낸다. 분홍 꽃들이 유난히 돋보이는 검정 비로드 바지를 입은 사내들 일부도 산기슭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며 추억한다.

◆평장(平葬)을 하다

청년들이 몇 명이 숲으로 들어가더니 나무를 베어 끌고 온다. 막 덮고 난 벌건 황토 위로 나무들을 놓더니 베니어 관도 함께 부숴 놓는다. 한쪽에서는 망자가 생전에 쓰던 것들을 태운다. 사람들은 한 손에 다 쥐기도 힘들게 향을 한 뭉치씩 태워 묘 주위에 놓기 시작한다. 가족들도 모여 무릎을 꿇고 마지막 하직 인사를 서럽게 한다. 다른 사람들도 향을 사르고 인사를 하더니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난다. 썰물처럼 일시에 밭을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서로 간단한 작별 인사를 나누고 포대에 고기 한 뭉치씩을 들고 미니 트럭에 오른다. 험한 산길을 헤치고 먼 길을 가야 하니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일부는 같이 마을로 돌아온다. 사진 찍기를 유난히 부끄러워하는 나이 든 망자의 딸은 70세 큰 오빠와 두 손을 잡고 떨어질 줄 모른다. 마을 삼거리는 어느새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다. 점심으로 국수를 먹기 위해 근처 '후아이 펑 마이 스쿨'에서 14, 15세의 몽족과 깔리양 소녀들이 전통 복장을 하고 나왔다.

◆산신제 풍경

아시아는 어느 지역에 가나 산신이 있는 듯하다. 특히나 사찰의 경내로 들어가면 많은 재래신앙의 흔적들이 습합되어 같이 혼재하고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산신이다. 또한 후원으로 돌아가면 판자로 만든 크고 작은 신전들에 부처님과 코끼리, 여신 등 각종 조형물이 어지럽게 놓여 있는데 그 안은 너무나 지저분하다. 근처에는 우리의 성황당 당산나무처럼 커다란 나무들에 오색천을 감아두었다. 사찰 입구에는 보통 호랑이를 탄 산신령 모습들이 조그만 제 각 안에 앉아 있는데 우리와 너무도 닮았다. 어찌 보면 우리의 민화 어디쯤 반쯤 웃고 있은 모습이다.

동남아는 부처님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타이나 미얀마 등은 '황금 붓다의 나라'이다. 골목 어귀를 돌면 어느 곳에서나 거대한 황금색의 쩨디(불탑)나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내려앉은 붉은빛 전탑의 위용에 압도된다. 대웅전 안 부처님도 황금빛이며 스님들의 가사 역시 그렇다. 각각의 부속 건물에도 수많은 장식이 화려하게 박혀 햇볕 아래 반짝거린다. 국민의 99% 이상이 그 아래에서 경배하며 각종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인산인해를 이룬다. 몸의 굴곡이 유난히 잘 드러난 드레스를 입고 꽃다발을 들고 경내로 들어서는 여인들의 모습은 신성하게까지 보인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으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싸와디 캅(카)"하고 인사하는 모습은 천 년 업장이라도 녹아내릴 듯하다. 누군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사를 들어보라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이 나라의 인사를 말할 것이다. 우리 국토도 아득한 옛날부터 부처님의 법이 온 사바를 미쳤듯이 이곳 역시 부처님의 광명이 대단하다.

◆산신에 대한 기원

우리 산하 어느 곳으로 가나 산신이 깃들어 있듯 이곳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나 높은 산들이 많은 시골 쪽으로 들어가면 더 많이 볼 수 있으며 고산족들이 사는 마을은 더하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 풍어제를 지내며 용왕님께 의지하듯 산에 사는 사람들은 흘러내리는 산등성이처럼 태고적부터 그런 생각들이 깃들어 왔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역시 산에서 시작되어 반만년이 넘은 세월 동안 우리의 삶 속에 뿌리내려 왔으니 말이다. 요즘에도 매년 새해가 찾아오면 좋은 날을 택해 산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조에도 헌강왕이 오악신(五嶽神)에게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신라 때에는 삼신산과 오악산, 고려 때에는 네 개의 산에 사악신, 조선시대에도 오악산인 금강산, 묘향산, 백두산, 지리산, 삼각산에서 제를 올리며 민족의 만 년 대계를 기원했다. 이런 양상은 어느 곳이나 비슷했으며 우리 민족의 혈맥 속에 면면히 이어왔다. 이곳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조국을 옆에 두고도 가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 들어와 소수 민족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으니 그 바람은 더욱 지극하고 절실하리라.

윤재훈(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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