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 건축기행] <27>약전골목 에코한방웰빙체험관

입력 2014-07-05 11:44:43

근대-현대 시간의 간극 대구읍성 빗대 재해석

약전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교남YMCA회관과 근대건축 원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이해영정형외과 두 건물의 층위를 하나의 흐름 속에 묶어 주는 에코한방웰빙체험관.
약전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교남YMCA회관과 근대건축 원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이해영정형외과 두 건물의 층위를 하나의 흐름 속에 묶어 주는 에코한방웰빙체험관.
내부 모습
내부 모습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되고 그 단체장을 뽑는 선거철이 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뉴 중 하나가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를 예로 들기도 하고 신도시의 예를 들기도 하면서 우리의 도시는 왜 이렇게 아름답지 못하며 혼란스럽고 계획성 없는 개발이 지속되고 있는가를 강도 높게 지적한다.

그러나 도시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최소한 나에게만은 도시는 재미없고 무기력한 존재처럼 보인다. 이처럼 도시가 엉망이 되게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목소리 높여 만들어 온 도시가 아직도 그 해결책, 아니 도시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우리의 도시가 아름답고 편안하며 세월이 갈수록 매력적인 도시로 먼 미래까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합의해야 하며 그리고 조급함 없이 무엇을 실천해 나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20세기 산업화와 함께 달려온 우리의 도시는 구조 방법이 미숙한 채 양적으로만 채워져 왔다. 그 결과가 현재의 도시이다. 근대의 밀물이 언제 우리 도시에 들어와서 어딜 가나 비슷한 복사판의 도시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언제 우리가 그 근대의 그늘에서 벗어났는지, 아니면 아직 근대를 겪어 오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문화적 현실 특히, 도시를 채우고 있으면서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우리 건축의 좌표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꾸준히 채워져 오고 있는 도시의 현상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합일적 의미로 도시와 건축에 대한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유럽의 도시들처럼 한국의 도시에 있어 역사적 맥락을 따라야 할 근거는 미약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살아온 도시의 장소, 형태, 조직의 연속성도 우리가 소홀히 했던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만약 더 이상 건축의 개체적 입장만 강조되어 간다면 도시는 더 이상 지속되어지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역사의식, 사회적 합의 그리고 자율성 등 이러한 요소와 함께 총체적인 이해에서 도시를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지나 개체의 자율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맞게 건축도 마찬가지로 분명히 이념의 시기를 지나 개념의 시기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전체적 맥락을 경시하는 태도에서 나타난 자율성의 다양함은 상대적으로 어떤 시대적 도그마를 상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큰 목표를 위해 조금씩 변해가는 생물(living organism)들과 마찬가지로 도시는 누가 뭐래도 시대의 성층화(stratification)와 함께 살아가는 유기체이기에 이 시대사회의 대승적 이념을 공유하기는 힘들어도 인간을 중심에 두고 지속 가능한 종으로 만들어가야 함은 분명하다.

산이 강이 되고 또 그 강이 산이 되기를 몇 번.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주변의 모습은 너무도 빨리 변해왔다. 지난 정권 전국의 하천에서 밀어붙이던 4대강 사업은 그러한 변화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4대강 사업에 대한 평가가 온전히 정리되지는 못하였지만 조급함의 결과로 여기저기서 환경에 대한 부정적 징후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4대강 사업은 정부의 주도하에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지만 민간자본의 깃발 아래에서 이에 못지않게 온 나라가 공사판인 적도 있었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동네가 사라져 버리는 일들이 마치 요술처럼 우리 도시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었다. 자본의 탐욕과 이를 떠받치는 개개인의 욕망들이 더해져 우리의 기억과 우리의 소중한 흔적들은 길을 잃고 헤매어 왔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부동산 거품이 사라지면서 막무가내로 밀어버렸던 낡은 것들에 대한 증오의 시선이 약해지고 예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그것들을 보기 시작하면서 사라져 가는 것들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대구의 구도심은 근대의 흔적과 기억에 대한 일련의 사업들을 해오고 있는데, 마침 몇 년 전에 대구의 남성로에 남아 있던 소중한 근대자산과 역사적 흔적이 하마터면 사라져 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가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원형의 보존은 물론이고 새로이 설계된 건물과 함께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가 즐거운 동거를 하고 있는 장소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세워진 교남YMCA와 약 50년 전에 지어진 이해영정형외과가 바로 그 건물들이다. 약전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동시에 독립운동과 우리나라의 기독교민족운동의 거점공간으로 이용되었던 역사적 장소인 교남YMCA회관과 서양 근대건축의 원리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이해영정형외과 건물은 비록 건축사적 양식은 서로 달라 어쩌면 불안 동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도시라는 것이 그 시대의 역사와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지나온 우리 도시의 기억들을 마치 화석처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2014년 지금의 기술과 해석으로 여기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이 두 건물의 층위를 하나의 흐름 속에 묶어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졌다. '에코한방웰빙체험관(?)'이 바로 그곳이다. 비록 건물의 이름과 담긴 프로그램이 많은 고민 속에서 나왔을까 라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건축가는 그 이름과 내용을 뛰어넘어 순수한 시공간적 해석을 바탕으로 새로운 환경을 훌륭하게 만들어 내었다.

교남YMCA회관(1914년), 이해영정형외과(1966년), 에코한방웰빙체험관(2014년). 반백 년의 차이를 두고 나타나는 세 개의 층위가 하나의 화석에서 어떻게 잘 결합시켜야 할지 많은 생각 끝에 건축가는 비움을 택한 듯하다. 100년 전 붉은 벽돌건물은 그 원형을 보존하고, 50년 전 근대건축물은 형태를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손길이 더해지고 여기에 수백 년 전에 놓여 있었던 읍성을 재해석하여 끼워 넣은 지금의 건물이 비워진 공간을 사이에 두고 앞으로 오랫동안 함께 서로 바라보며 지낼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비록 사라지고 없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읍성과 100년 전 조국의 독립을 갈망했던 투사들의 피와 눈물이 얼룩진 붉은 벽돌 그리고 근대건축의 질서정연한 비례를 한 시대 한 공간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 글의 끝머리에 문득 온 도시를 뒤덮고 있는 초고층의 아파트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난 매일 도시의 고층 아파트들 올려다보면서 이제 우리의 상상 속에만 남아있는 공룡을 생각한다. 아득한 옛날 공룡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지만 자연의 순리 속에서 사라졌듯이 우리의 도시가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곳이 되기 위해 도시의 공룡들도 사라져야 되지 않을까라는 확신을 가지지만 그들의 흔적이 너무나 큰 상처를 남기고 영영 치유할 수 없는 길로 갈 수도 있기에 언제나 두렵다.

글 사진 조극래 대구가톨릭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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