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것이 달라진다, 세상과 인간도 달라진다

입력 2014-07-05 08:00:00

탈것의 진화, 그리고 인간

미국 포드사 T모델 자동차
미국 포드사 T모델 자동차

매일신문사가 있는 계산오거리 주변은 '탈것' 들로 붐빈다. 왕복 10차로의 달구벌대로는 여러 종류의 자동차, 버스, 오토바이들로 북적인다. 달구벌대로 아래에는 도시철도 2호선이 시민들을 태워 나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한 탈것들만 있는 게 아니다. 한 건장한 청년은 4, 5세 아이들이나 탈 만한 크기의 미니바이크를 타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닌다. 계산성당 앞을 지나다 보면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 크루저보드 등을 타고 그 앞을 지난다. 조금만 둘러봐도 우리 주변은 '탈것'들 천지다.

탈것의 진화는 세상을 바꿔 왔다. KTX 같은 고속열차가 없었다면 우리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짧게는 4시간, 길게는 보름 이상 걸려 도착했을지도 모를 일이며, 제트비행기가 없었다면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해외 대신 경주나 부산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탈것이 점점 발전했기에 인간이 이해하는 세계의 폭은 점점 넓어졌다.

그래서 이번 주는 '탈것'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을 바꾼 탈것의 역사부터 단순히 이동수단에 그치지 않고 다른 의미가 부여된 탈것 이야기도 해본다. 그리고 독특한 탈것을 타는 대구 사람들도 만나볼 수 있다.

인류는 문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탈것, 즉 이동수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처럼 인류의 역사는 탈것이 발전하면서 그 세계를 넓히기 시작했다. 바퀴부터 비행기까지 인류 역사에 탈것들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찾아봤다.

◆기원전 3500년경: 바퀴의 발명

인류 역사에 바퀴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때는 기원전 3500년 경이다. 메소포타미아 에렉의 이난나 신전에서 발굴된 한 서판에 바퀴 달린 운송 도구가 그려진 것이 바퀴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그전에는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 통나무 같은 둥근 물체 위에 올려 굴리는 방식으로 옮기거나 썰매와 비슷한 도구를 이용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바퀴는 모든 탈것의 시초로 그 의미가 크다. 바퀴가 생기면서 수레가 생겨 더 많은 물건을 손쉽게 옮길 수 있게 됐다. 바퀴 덕분에 말과 소를 이용해 사람들은 더 멀리 갈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바퀴도 많은 발전을 거듭했다. 맨 처음 바퀴 모양은 나무의 줄기를 휘어서 만들거나 통나무를 잘라 잘 굴러가게 다듬은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바퀴살과 축이 개발됐고, 바퀴 소재도 나무에서 강철로, 다시 고무 타이어로 바뀌는 등 발전을 거듭했다.

◆기원전 15세기: 돛의 발명

돛단배가 처음 발명된 곳은 이집트다. 기원전 15세기 때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돛을 이용해 지중해를 건넜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돛단배는 이후 그리스'로마 시대에 이르러 군선 또는 무역선으로 많이 이용됐다. 당시의 군선 모양은 영화 '벤허'에서 주인공 벤허(찰턴 헤스턴)가 노예가 돼 노 젓던 배를 생각하면 된다.

돛단배는 인류가 자신이 살던 땅을 떠나 좀 더 멀리 있는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탐험'을 가능하게 했다. 특히 14, 15세기의 범선은 '대항해시대'의 상징이었다. 콜럼버스는 범선 산타마리아 호를 타고 신대륙을 발견했고, 마젤란이 이끌고 간 범선 빅토리아 호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입증해내는 등 14, 15세기의 탐험가들은 모두 돛을 단 범선으로 세계를 탐험했다.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으로 마야, 잉카문명은 멸망했고 유럽인들의 점령과 수탈의 어두운 역사가 시작됐다.

◆1783년: 프랑스 몽골피에 형제 열기구 발명

1783년 11월 21일 파리 외곽에서 몽골피에 형제가 만든 열기구가 최초의 유인비행에 성공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날개를 위아래로 흔들면서 나는 장치를 고안한 이래 인류 최초로 하늘을 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몽골피에 형제가 열기구로 하늘을 난 뒤 이를 실용화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비행선이다. 뜨거운 공기 또는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넣은 풍선에 프로펠러와 엔진을 달아 날아가는 비행선은 제트비행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하늘을 나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193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한 힌덴부르크 호가 미국 뉴저지에 도착하는 순간 폭발하면서 비행선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1807년: 미국 뉴욕~올버니 증기선 정기항로 개설

증기선을 처음 발명한 사람은 드 주프루아 다방(1751~1832) 후작이었다. 다방 후작은 1783년 '피로스카프호'를 만들어 많은 과학자들과 구경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온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15분 동안 항해했다. 하지만 파리의 왕립 과학아카데미에서 인정해 주지 않아 특허를 받지는 못했다. 이후 증기선을 상업적으로 성공시킨 사람은 미국의 로버트 풀턴(1765~1815) 이었다. 풀턴은 그의 증기선 클레멘트 호를 뉴욕과 올버니 사이를 오가게 하면서 세계 최초로 정기항로를 개설해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증기선의 상업적 성공으로 여객선은 점점 대형화됐으며 사람들의 해외여행도 이전 세기와 비교해 훨씬 쉬워지고 그 수요도 늘어났다. 모레타니아 호와 타이타닉 호는 증기선이 연 해외여행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리고 증기선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귀족들의 유람선으로 거듭나며 지금의 '크루즈'의 모태가 되기도 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까지 각 선박회사는 초호화 대형 여객선을 경쟁적으로 만들어 운항했다.

◆1825년: 영국 스톡턴~달링턴 철도 개통

1804년 영국의 리처드 트레비식(1771~1833)이 철도용 기관차를 개발했지만 실제 상업용도로 이용한 사람은 조지 스티븐슨(1781~1848)이다. 그가 개발한 기관차 로코모션 호는 1825년 영국 스톡턴과 달링턴 구간을 달리는 데 성공하며 최초의 상업철도가 됐다. 이후 1829년 맨체스터와 리버풀 사이의 철도가 개통되면서 본격적 여객철도 시대가 열렸다.

첫 상업철도는 19세기에 문을 열었지만 철도의 르네상스는 20세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세기 말 전기기관차 개발과 디젤기관차의 발명 등은 철도의 속도 경쟁에 불을 붙였다. 속도 경쟁 결과는 1960년대 일본의 신칸센과 프랑스의 TGV로 대표되는 고속철시대의 개막으로 나타났다. 또한 1863년 런던의 패링던과 패딩턴 사이에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생기면서 도시의 대중교통수단 중 가장 효율적인 운송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1826년: 프랑스에서 옴니버스 첫 운행

1826년 프랑스 낭트에서 온천을 운영하던 스타니슬라 보드리(1780~1830)는 목욕탕을 이용하는 손님을 태워 나르기 위해 마차를 정시에 낭트 시 중심가에 보내 손님을 모았다. 그는 이 마차의 이름을 목욕탕으로 가는 길에 매일 지나쳤던 모자 가게 이름(Omnes Omnibus: 라틴어로 '모두를 위한 모든 것'이라는 의미)에서 영감을 얻어 '옴니버스'라고 지었다.

이전부터 다인승 마차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노선을 정해 왕복하는 지금의 '버스' 개념이 생긴 건 이때부터다. 이때부터 '대중교통'의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지금은 말 대신 디젤엔진이 버스를 몰고 있고 차량 내 좌석 형태나 요금 등은 각양각색으로 변화했지만 '계급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라는 버스의 개념은 변하지 않았다.

◆1908년: 미국 포드사 T모델 자동차 개발

1769년 프랑스에서 퀴뇨가 증기자동차를 만든 뒤 자동차 기술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1885년 독일의 카를 벤츠가 처음으로 대중 판매를 위한 자동차를 제작한 이래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뤄낸 장본인은 바로 미국의 헨리 포드였다. 헨리 포드는 1908년 T모델 자동차를 선보이면서 컨베이어벨트식 조립라인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한 달에 11대만 생산되던 T모델이 1914년에 한 대를 93분 만에 조립할 수 있을 정도의 시설을 갖추고 그해 25만 대를 생산했다. 결국 T모델의 가격은 낮아졌고 판매량은 늘어나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포드의 T모델은 지금의 자동차 문화를 만들어 낸 최초의 자동차라 할 수 있다. 가격이 낮아진 자동차는 임금노동자도 구입 가능한 수준이 됐다. 이는 '대량생산으로 인한 대량소비'로 경제를 움직이는 이른바 '포디즘'의 시대를 열었다. 자동차가 자본주의와 중산층의 한 상징으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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