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민식(52)은 영화 '명량'(이달 30일 개봉)을 촬영하며 고민이 깊었던 듯했다. 촬영을 모두 다 마치고 개봉을 앞둔 상황인데도, 자신이 '성웅' 이순신 장군을 제대로 연기했는지 되짚어 봤다.
1597년 임진왜란 6년, 단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공격에 맞서 싸운 위대한 전쟁 명량대첩을 담은 '명량'. 이 작품에서 최민식은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을 만한 위인을 연기했다. '혹시 누가 되지는 않았을지'라고 걱정하는 그의 고뇌가 오롯이 전해졌다.
최민식은 "신화와 같은 존재를 과연 내가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는 고민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우리가 교과서나 역사서를 통해 쉽게 접한 인물의 모습이 아닌,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 이순신의 영웅 이면에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의도적으로 다르게 표현하려고 했다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그분에 대해 알려고 하면 할수록 제가 너무 초라해졌어요. 어마어마한 난관에 부딪혔죠. 뭐라고 해야 할까요? 거대한 존재감에 맞닥뜨렸는데 어디서부터 이분에 대해 풀어나가야 할지, 방대한 업적과 신념을 두 시간 안에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막막하더라고요."
최민식이 '영웅'을 연기하게 된 건 김한민 감독의 공이 컸다. 영화 '최종병기 활'을 흥행시켰던 김 감독은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차기작으로 생각했다. '이 역할을 누가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했을 때 최민식을 떠올렸다. 이순신 장군 같은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업적을 소화해낼 수 있는 연령대나 연기 내공을 봤을 때, 당연히 최민식이었다. 다른 사람은 고려하지 않았다. 물론 최민식이 응하지 않았으면 이 영화는 다른 배우 캐스팅에 머리를 싸매야 했다.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을 꽤 했으니 김 감독이 그를 섭외하려 '삼고초려'했을 것 같은데 "아니다"고 자른 최민식. 그는 "다른 배우들은 바빴던 것 같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을 처음 만난 이야기를 했다.
"한 음식점에서 만나서 소주 한잔을 했죠. 현재의 영화산업에서 이순신 장군에 관한 영화를 본격적으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그 의도가 궁금했어요. 이야기를 나누는데 감독의 역사관과 그 인물에 대한 영화적 소신 등이 저를 움직였죠. 그래서 의기투합하게 됐어요. 물론 걱정은 태산 같았지만요."(웃음)
걱정대로 촬영 현장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최민식은 "실제 전쟁터였다"고 짚었다. 30년 넘게 연기한 베테랑 배우도 처음 경험해보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30m 길이 정도의 판옥선을 실제 제작해서 짐벌(Gimbal'배의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는 특수효과 장치) 위에 올려놓고 실제 바다 위에서 싸우는 장면들을 재현했어요. 육체적인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아시다시피 많은 컴퓨터그래픽(CG)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 효과를 미리 염두에 두고 연기하는 것이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죠. 영화 절반을 차지하는 액션신 때문에 많은 부상자가 속출하기도 했고요."
'명량'은 61분 동안 해전신을 담았다. 두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의 절반가량을 액션신으로 구성했다. 제작진은 역사 고증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조선 수군의 배와 일본 전투선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선박을 건조하는 등 초대형 해전 세트를 제작했다. 배우들이 착용하는 갑옷도 당시 모습으로 복원됐다. 20㎏이 넘었다. 최민식은 "갑옷을 입고 벗는 일도 쉽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힘들었지만 배운 것도 많았다. 특히 최민식은 이순신 장군이 남긴 말 중에 "'경거망동하지 마라. 태산같이 무겁고 침착하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왜군을 보고 두려워하는 군사들 앞에서 실제로 남겼던 말씀 중 하나죠. 수없이 몰려오는 왜군을 보고 두려워하는 부하들 앞에서 한 말씀이라는데,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장군의 강직함이 느껴지는 어구라서 촬영할 때 큰 힘이 됐어요."
앞서 최민식은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촬영에 앞서 씻김굿을 부탁하기도 했다. 씻김굿은 임진왜란 때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진도 지방 특유의 굿. 그는 "아군과 적군을 떠나 실제로 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전쟁이었다"며 "그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이기 때문에 후손으로서 예를 갖추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서 영화 '취화선'을 찍을 때도 그랬다. 이번에도 험난한 촬영 일정을 아무 사고 없이 마무리할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을 함께 담았다"고 전했다.
그의 바람대로 큰 문제 없이 '명량'은 조만간 관객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최민식은 어서 빨리 '명량'으로 관객을 만나고 싶지만, 또 다른 희망사항도 있었다. 최근 들어 영화 '악마를 보았다'(2010),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신세계'(2012) 등 무겁고 어두운 역할을 주로 맡은 그는 이미지 변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도 정말 밝은 캐릭터를 하고 싶어요. 사람 죽이는 작품 말고, 선혈이 낭자한 영화 말고, 정말 밝고 긍정적인 캐릭터를 하고 싶습니다. 촬영도 재밌게, 영화도 재밌게 만들고 싶네요."(웃음)
물론 당분간 그런 모습을 보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조만간 개봉할 할리우드 진출작인 뤽 베송 감독 영화 '루시'에서도 최민식은 마약 조직의 중간 보스 미스터 장 역을 맡아 섹시스타 스칼렛 요한슨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인물로 등장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대만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마약 조직에서 운반책으로 일하던 여성 루시가 갑자기 초능력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SF영화. 최민식이 스칼렛 요한슨과 어떤 연기를 펼칠지 관심이 쏠리는 작품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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